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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다릅니까?


Section: 3. 손을 바라보다





  불행하다면 끔찍하게 불행한 일들을 관통하면서도 용케 연구본부장를 잘 지켜낸 라울은 자신의 넓은 사무실의 번뜩이는 책상 앞에 앉아서, 2개월 전 새로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했던 신형 안드로이드들에 대한 연구보고서, 사후불량률, 피드백자료와 기사등, 다양한 도표와 파일들을 단말기 화면에 띄워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으며 신형 안드로이드의 상태나 반응이 꽤나 양호한 상태임을 몇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긴장되는 목뒤를 두툼한 손으로 문지르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사건이 발생한 후 2여년을 몇몇의 운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그 사건들의 불길하고 끔찍한 면들을 감추고 당국과 회사의 실망과 불안을 모두 상쇄할만한 성과를 보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고, 그 덕분에 꽤나 큰 도박이었음에도 그를 믿어준 회사의 호의를 입어 이안스 인듀 프로젝트의 인공생명체가 보였던 불안정한 점들을 제한하고 제거한 상태의 새로운 안드로이드들을 무사히 출시하게 되었다.

  이안스 인듀 기체가 자괴함으로 인해 그렇게나 얻어내려 애썼던 프로젝트 후반부의 연구 데이터 전부를 손실해 버렸지만, 키샤가 남긴 개발 자료와 시온이 테스트기간동안 백업해둔 구동정보만으로도 라울, 그리고 회사는 지금까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나 기체구동에서 진일보한 성과를 건져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키샤 리버스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외부저장서비스 사용 정보를 기적적으로 알아내서 그곳에 보관된 그녀의 연구 자료들을 확보했을 때, 그는 환호성을 질렀다. 과연 그녀는 천재 일뿐 아니라 아주 꼼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외부저장서비스에 자신의 연구 자료와 기록들을 –그녀는 유치하게도, 연구물들을 자기의 자식이라고 불렸다- 질서정연하게 정돈하여 개별저장 해두었으며, 실험단계인 기체도 많이 남겨 두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가 소속되어 있었던 회사의 소유로 온전하게 넘겨지게 된 그녀의 빛나는 재능이 남겨놓은 이 유산들의 놀라운 가치는, 이안스 인듀 기체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고 키샤를 포함한 몇몇 인간에게 끼친 손해까지도 되갚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한 것이 될 것이다.


  신형 안드로이드들은 지난 번 이안스 인듀 프로젝트에서 보였던 ‘결점’을 보안하기 위해 정해진 프로토콜 외에는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하도록 시스템 마스터의 컨트롤에 완전히 귀속되는 제한된 기능만을 주었지만, 키샤의 중앙처리장치 ‘메멘토’와  시온의 ‘셀프아이덴티티’ 운영체제가 탑재된 안드로이드들은 그 제한된 조건 안에서도 가능성이라는 개념이 담긴 창의적인 연산이 가능했다. 새로운 네오호모사피엔스의 신형 안드로이드들은 기존의 한계와 개념을 뛰어넘어 혁신적인, 그러나 완전히 컨트롤이 가능하기에 위험하지 않은 인공생명체들로의 성장에 성공한 것이다.

  이 능률적이고 효과적인 보조자로서의 인공생명체들은 다양한 방면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며 네오호모사피엔스 회사는 전과 비교 할 수 없는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남겨놓은 ‘또 하나의 유산’은 라울의 회사와 그의 경력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줄 터였다.


  시온 에이브래햄도 여전히 네오호모사피엔스회사의 인공생명체 개발부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인공인격을 사람에 가깝도록 발전시키는 연구를 해오던 것과 달리 현재는 인공생명체들의 자아가 운영자들의 컨트롤을 벗어나거나 요구치 이상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었다.



  시온은 한쪽 턱을 팔에 기댄 채 의자에 엉덩이 끝만 걸치고 등받이에 푹 기댄 모습으로 단말기의 화면 위를 가득 채운 프로그램언어와 운영체제 시뮬레이션결과 보고서를 지루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련의 사건을 지나오기 전의 시온은,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시온이 업무용 안드로이드일 것이라 착각할 정도로 군더더기 없고 말끔하게 정돈된 스타일이었지만, 이제 그는 외부의 작용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처럼 흐트러지고 느슨해졌다. 낯선 사람에게도 무례한 사람에게도 전혀 속내를 보이지 않으며 늘 깍듯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는 이제 매사에 건성으로 행동하는 퉁명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의 이런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낯선 사람처럼 느끼고 대했다.


  기대고 있던 팔이 뻐근했는지 고개를 세우고 손목을 이리 저리 꺾던 시온은 거의 떨어질 것처럼 의자 끝에 걸쳐져 있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길게 기지개를 켰다. ‘성공적’이라는 수식어가 잔뜩 붙은 보고서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그는 보고서 파일을 닫고 사무실 한쪽의 커피머신으로 다가갔다. “아메리카노.” 커피머신을 향해 그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커피머신이 작게 구동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원두가 갈리는 소음이 자그맣게 들리며 곧 커피가 내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하얀 컵으로 흘러내리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바라보며 무감하게 눈을 깜빡였다. 검은 액체가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것이 잦아들자 그가 컵을 집어 들었다.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불어 식히고 있을 때, 등 뒤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문간에 기대있는 라울이 보였다. 그가 한쪽 손을 유쾌하게 올려 보이며 말했다.


  “어이. 시스템 마스터- 아직 퇴근 안했을 것 같더라니.”

  “....”


  그의 흥겨움이 담긴 목소리에 시온은 눈길을 돌려 커피머신의 작동 판에 표시된 시간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미 퇴근시간은 훨씬 지나가있었지만, 그는 퇴근시간 같은 것을 개의치 않게 된지 한참 되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컵 안의 커피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여기 까지 어쩐 일이세요? 임원진 회의 있다더니 아직까지 퇴근 안 하시고 회의 중이셨어요?”

  “그까짓 퇴근이 문젠가!”


  라울은 무척 기분이 좋은 것이 분명한 표정과 말투를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성큼성큼 걸어와 친숙한 태도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의 변한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낯설고 어색해 했지만 라울은 그의 까칠하던 사회성이 무던해진 것이라며 옹호했다. 라울은 커피를 마실 건지 물어보듯 커피머신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해 보이는 시온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아주 엄청난 소식을 가지고 왔단 말일세.”

  “뭔데요?”

  “자, 놀라지 말게.”


  그는 시온의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고 싶은지 뜸을 들이며 그의 표정을 훑어보았지만, 커피를 몇 모금 더 들이키는 시온은 책상에 한쪽 엉덩이를 걸터앉은 채로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눈썹만 까딱했다. 그의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몇 번 더 빙글거리는 표정을 짓더니 몇 초 더 뜸을 드리고 말했다.


  “이걸 보게나.”


  그는 시온의 책상에 있는 단말기로 몸을 굽히더니 자신의 개인저장장치를 시온의 컴퓨터에 연결하고 자신의 아이디와 페스워드를 입력했다. 한참 파일 사이를 뒤적거리던 그는 이윽고 파일하나를 실행시켜서 사무실 한쪽에 붙어 있는 커다란 모니터 글라스에 이미지 하나를 띄웠다. 안드로이드 기체의 외형디자인 파일이었다.


  “....!”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본 시온은 커피를 마시던 손길을 우뚝 멈췄다. 안드로이드의 표준사이즈보다 자그마한 체구. 어깨를 덮는 갈색의 부드러운 웨이브 머리카락. 밝은 회색의 눈동자에 살그머니 웃고 있는 입 꼬리의 주름과 창백한 피부...

  화면위에 떠올라 있는 안드로이드의 외형은 키샤 리버스를 꼭 닮아 있었다. 모니터로 두어 걸음 걸어간 시온이 말했다.


  “이건.. 키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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