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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다릅니까?


Section: 1. 손등을 바라보다 - 08




  창에 얼굴을 바싹 대고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지젤 박사와 부장 검사는 모든 조명이 파괴되면서 새까맣게 변한 창에서 반사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보조 전등이 작동되며 컴컴하던 방안에 희미한 노란 불빛들이 켜졌다. 꼼짝 않고 웅크린 모습 그대로 있는 이안스의 모습을 확인한 지젤은 볼을 부풀려 크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방법이 없네요.”


  그는 부장판사와 눈빛을 교환한 뒤 회사 직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간접적인 의사전달 시도 실패, 유무선 네트워크 접근 실패, 직접적인 음성 인식 실패, 무슨 방법으로도 이쪽에선 컨트롤이 불가능하니 그냥 기체를 강제종료 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미스터 ‘라울’. 이렇게 시간 끌어봐야 당신들 회사에도 좋을 게 없습니다.”

  “강제종료? 그게 가능하면 이 삽질을 하겠어요?”


  ‘라울’이라 불린 키가 작은, 하지만 풍채가 좋은 남자는 입술을 자근거리며 씹고 있다가 지젤의 말에  외치듯 대답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라울은 ‘네오호모사피엔스 주식회사‘의 주력 사업인 인공생명체개발부 연구본부장이었고,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안스가 구속되어 있는 통합윤리부를 자진해서 찾았지만,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자신이 전면에서 떠맡은 것에 대해서 적지 않은 불만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작부터 정부기관을 구워삶는 건 본부장인 그의 몫이었다.


  그는 등 뒤의 금연표시를 보는 둥 마는 둥하며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재빨리 불을 붙였다. 그의 옆에 서서 지루한 얼굴로 손톱 밑을 살펴보고 있던 라울과 동행한 그의 부하직원은 그가 담배를 꺼내들자, 그의 흡연을 저지하려는 듯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가 그럴 분위기가 아님을 감지하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지젤은 답답하다는 듯 목뒤를 문지르며 말했다.


  “손목과 목 뒤의 외부접속단자를 통해서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처럼 이런 연출된 상황 내에서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플러그인한 다음 운영체제에 접근해서 초기화 명령을 넣으면-”

  “그러니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저희도 초기 회수단계에서 그것부터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기억장치나 운영체제 안으로의 외부 간섭을 강제차단하고 있어서 기체를 대기 상태로 만드는 게 고작이었어요. 게다가, 대기모드가 계속 유지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대기 모드에 진입시켜도 자의에 의해서 바로 기능을 활성화시켜버리고 있어요...”

  “그 대단하다는 회사가, 이게 뭐요? 안드로이드 하나 제어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거요? 기체를 제어해서 축적된 데이터를 회수할 수 있도록 기다려 달라고 한 게 벌써 3개월이 지났소!”


  듣다 못한 부장검사의 호령에 라울은 제대로 태우지도 못한 담배를 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 끄고 다급하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의 미끌미끌한 피부에는 연신 땀이 흐르고 있었다.


  “부장검사님, 저희라고 그동안 아무것도 안 했겠습니까.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산업용 안드로이드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부에서의 변질된 진입이 불가능하게 개발된 게 바로 ‘이안스 인듀’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도 인간의 심중을 읽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완전히 독립적인 상태에 돌입할 수 있는 프로세서와 기체. 그게 우리 회사에서 이번 연구에 추구한 거였고 그 연구의 집약체가 ‘저거’란 말이죠. 거기다가 말이죠,”


  라울은 목이 타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침을 끌어 모아 삼켰다. 그는 손을 내밀어 비상등으로 흐릿하고 누런빛으로 가득 차 있는 창을 가리켰다. 꼼짝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안스의 옆 테이블위의 타블렛 컴퓨터는 아직도 힘없이 흰 연기를 모락모락 내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스스로 실행한 메인터넌스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업그레이드 했어요. 이제 근사 거리에서는 물리적인 연결 없이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기계를 자기 멋대로 다룰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단 말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금까지 우리도 손만 놓고 있었던 거 아닙니다. 하지만 기능을 정지하기 위해 외부에서의 변질된 접속을 시도할 때마다, 토스트처럼 바싹 구워버린 해커들 전뇌와 간섭 기계장치가 한둘이 아니에요. 우리가 시설이 없어서 강화유리 유치장에, 저깟 구속복 천 쪼가리로 돌돌 감아 두자고 한 게 아니라구요. 지가 사람이라고 믿어서, 그래서 그나마 이 병신 같은 쇼가 통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지젤이 말했다.


  “아무리 완벽하게 외부간섭을 차단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라 해도, 닫았으면 열 수 있는 게 기본 아닙니까? 게다가 개발과정이 당신 회사 내의 연구였는데 그 과정에 대한 데이터가 있는 이상 이런 돌발 변수를 해결하기 위한 임의적인 컨트롤은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 키샤가 있었으면 벌써 수를 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죽어버렸으니, 지금 저희 연구팀 전체가 패닉 상태이에요. 사실, 이 기체와 중앙처리장치 개발에 대한 연구는 사망한 키샤 리버스의 독자적인 작품이었어요. 그녀는 우리 회사의 메인엔지니어였지만 기체개발에 대한 독립된 권한을 가지고 있었죠. 우리는 키샤의 개발과정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지켜줌과 동시에 그녀의 연구를 지원했고 그 대가로 안드로이드에 대한 라이센스와 개발결과의 이익을 나누는 형식이었단 말이죠. 그러니 이 기체에 대한 순수한 연구 데이터는 키샤 외에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없죠. 우리가 개발에 직접 관여한 운영체제 외에 기체에 대해 회사 내에 오픈소스로 남아 있는 건 개발 이후 구동에 대한 데이터에 대한 것뿐이었구요...”


  말을 멈추고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꽉꽉 누르던 라울이 뭔가 더 잔소리를 하려 드는 지젤을 막으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이번 기체 개발에 대한 데이터는 키샤의 개인소유 외부 저장장치에 모두 백업되어 있었고 다행히도 회사 측에서 그 데이터를 모두 확보한 상태에요. 현재 모든 팀원이 매달려 자료 파악 중입니다. 그러니 조만간 기체 컨트롤에 대한 돌파구가 생길 겁니다.”


  라울의 말에 긍정도 응원도 하지 않고 지젤은 회의적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미적거리는 모든 상황에 짜증을 느끼는 부장검사는 팔짱을 낀 손아귀로 팔꿈치의 옷자락을 구기적거리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소. 아무리 대단한 기체라 해도 영구 운동은 불가능하지 않소. 지금처럼 무선 패널로 전력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결국 방전 되서 기능이 정지될 텐데, 그럼 분해해서 저장장치를 확보 하면 되는 거 아니오? 도대체 전원을 차단하지 않는 이유가 뭐요?”


  더욱 울상이 된 라울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이 기체의 경우 정상 종료가 아닌 방전으로 임의 종료되면 축척 데이터가 소멸되면서 초기화됩니다. 연구 진행 중인 프로토 타입이라서...”


  라울의 말에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부장 검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쳐진 눈썹이 짜증을 담고 꿈틀거렸다.


  “나 원, 정말 지긋지긋 할 정도로 이야기는 원점이군. 그냥 어디에 집어넣고 폭파라도 해버리시오! 비싸고 귀한 OS에다 메멘토인지 멘토인지 획기적인 CPU가 탑재된 기체라도 명령도 따르지 않는데다가 위협적이기까지 하잖소, 언제까지고 지지부진하게 이 사건을 표류시켜 놓을 순 없소. 안 되겠소. 우리 통합윤리부에서도 이 이상의 관용은 없소. 저 기체를 폐기처분하시오!”


  그의 불호령으로 일순 조용해졌던 방안에 비명 소리 같은 라울의 목소리가 울렸다.


  “말도 안 됩니다!!”


  라울이 마르고 갈라진 입술에 혀로 침을 묻히고 이어 말했다.


  “저건 저희 회사, 아니, 현존하는 인공생명기술의 집약체이자, 가장 혁신적인 시험체라구요! 자금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로 어떤 인공생명연구보다도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저 기체의 온전한 회수가, 그리고 키샤의 관리 하에 있지 않았던 기간 동안 스스로 축적시키고 발전시킨 과정의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거기다 지금까지 우리 연구에 투자된 정부 지원도 엄청나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그냥 파괴한다는 건, 말도 안 돼요! 그 손해를 누가 책임지고 감당한단 말입니까!?”

  “그럼 계속 저렇게 구동을 유지하는 채로, 이도 저도 못하고 정신 병원인 냥 쇼를 하며 통합윤리부의 유치장에 계속 가두어 두기라도 하란 말입니까? 이 위태로운 쇼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소?”

  “하지만 부장검사님, 지금도 어떻게든 현상을 외면하면서 자기가 사람이라고 믿고 있지 않잖습니까. 그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한, 한동안은 얌전히 갇혀 있을 겁니다. 그렇게 번 시간동안 저희 팀원들이 방법을 찾아서 결국 저 기체를 멈출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멈출 겁니다!”


  라울은 꽤나 자신하며 말했지만 입술을 꾹 다물고 라울을 옆 눈으로 바라보던 부장검사는 대답 없이 잔뜩 찡그린 눈을 돌려 창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망설임을 용케 알아챈 라울이 부장검사 옆으로 한 걸을 다가서며 다급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쇼, 부장검사님, 네트워크에서 단절시켜 놓은 이상, 저 녀석은 얌전히 갇혀있을 겁니다.”


  그때, 퍼뜩 생각난 듯 라울이 지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지젤 박사, 저 유치장은 스탠드얼론 상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전기장치가 과부하 된 거죠?”

  “아, 아까 갑자기 상태변화를 보여서 급하게 자료를 끌어올 때, 잠시 가동했던 무선통신을 차단하는 걸 잊었네요. 죄송합니다. 바로 오프라인으로 만들죠. 음.. 내가 타블렛을 어디다...”


  지젤은 두리번거리며 타블렛 컴퓨터를 찾다가 이안스가 기대고 있는 테이블 위에서 연기를 피우고 있던 자신의 타블렛 컴퓨터를 바라본 후, 쯧- 하고 짧게 혀를 차고 나서 벽에 별도로 마련된 외부접근장치로 다가가서 케이블을 꺼내 자신의 목 뒤 단자에 연결했다. 그의 뒷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부장검사는 창 앞으로 한걸음 걸어가서 처음의 모습 그대로 있는 이안스의 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참을 고민하는 그의 등감을 바라보고 있는 라울과 그의 비서도 역시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인공생명체가 인간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지만, 그건 기계적 결함이나 저급한 행동양식 프로그램의 오류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소. 이렇게 개인적인 적의를 가지고 사람을 살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단 말이오. 그래서 동요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도 별다른 이견 없이 비공개로 사건을 진행하고 있고 말이오. 그래, ‘저게’ 그렇게 훌륭한 가치를 가진다고 칩시다.”

  “치는 게 아니라 사실이라구요!”

  “그래 사실이라 치고, 통합윤리부에서야 기밀처리 하고 있지만, 죽은 피해자 쪽은 어떻게 할 거요? 위대한 연구를 위해 희생되었으니 위령비라도 세워 줄 거요?”


  라울의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가 어두운 실내의 작은 전등을 간혹 반사 했다. 완고하던 부장검사의 태도가 조금 완화되는 것을 느낀 그는 손발을 다 움직여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키샤 리버스는 가족이 없습니다. 우리 회사가 집이었고 그녀의 실험체들이 가족이었죠. 저희 네오호모사피엔스 주식회사에서는 이 연구 과정 중에 목숨을 잃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위령비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할 겁니다. 이대로 이 연구가 멈춰져 버린다면, 그래요, 그녀도 슬퍼할 거라고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쇼. 저희 쪽에서 추가피해 없이 어떻게든 저걸 기능정지 시키겠습니다.”


  부장검사는 이마를 찡그린 채로 한참을 반응 없이 서 있다가, 입안으로 작게 웅얼거렸다.


  “확실히... 그냥 포기하기엔 아까운 기체지...”


  검사는 고개를 들고 공중으로 피로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도 이 길고 지루한 줄다리기가 슬슬 지치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치를 보며 새로이 꺼낸 담배의 필터를 지근지근 씹던 라울은 막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시스’를 향해, 그러니까 인공생명체개발부의 ‘시스템 마스터’, ‘시온 에이브레햄’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시스템 마스터’! 자네도 부장검사님께 제대로 설명 드려! 근본적으로는 자네 책임이기도 하잖아!”

  “......”


  방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의 희멀건 한 얼굴을 향했다. 시스는, 아니 시온은 양손을 넓게 펴서 얼굴을 감싸 쥐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목과 귀를 덮은 부스스한 검은 머리카락이 두어 가닥 미끄러지듯 그의 볼 옆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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