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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Pieces-단편

어머니의 방

하달리 2018.02.20 22:21

어머니의 방




  그녀는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어머니의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달 동안이었더라, 의도한바 는 아니었지만 - 아니 사실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방에는 발자국 하나 들여놓기는커녕, 열쇠라도 잃어버린 사람처럼 문고리조차 잡지 않았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어머니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 없는 방을 차지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먼지가 방문의 움직임에 맞추어 뽀얗게 올라왔다. 그녀는 낮게 기침을 하면서 눈앞의 공기를 손을 휘적이며 의미 없이 저었다. 최대한 숨을 참은 다음 그대로 창문으로 걸어가 먼지 낀 커튼을 열고 삐거덕거리는 거친 소리가 나는 창문을 열었다. 정오를 막 지난 따가운 햇볕과 아직은 쌀쌀한 초봄의 공기가 방으로 밀려들어오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크게 밖을 향해 심호흡을 몇 번한 그녀는 그제야 쭈뼛거리며 방 안을 돌아봤다.

 

  언제나 소녀처럼 팬시한 취향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방은 그녀의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작고 흐릿한 꽃무늬가 아지랑이처럼 물들어 있는 자그마한 스탠드와 손으로 짠 베이지색 레이스 받침위에 올려진 나무로 깎아 만든 기린 두 마리. 벽 한쪽에 세워놓은 낡은 나무 옷걸이에는 그녀가 좋아하던 회색 스웨터가 하나, 검은 주름치마가 하나 얌전히 걸려 있었다. 책상 앞 의자 옆에 가지런히 놓인 광목으로 된 실내화는 사용된 시간만큼, 신발의 주인만큼이나 노쇠하고 낡아 있었지만 편안해 보였다.

  그녀의 낡은 책상 위에 놓인 빈티지한 체크무늬 패브릭으로 표지가 포장된 여러 개의 노트들. -그녀의 노트에는 책속의 한 구절이나 잘 말려진 압화(壓花), 작년 초 여름밤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찾은 네잎클로버.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그녀의 아잇적 모습의 폴라로이드 사진. 끄적인 서명들과 의미모를 글자들이 가지런히 들어 앉아있었다.- 주석으로 만들어진 작은 천사상모양의 펜레스트, 책상 벽을 장식한 낡은 편지지와 오래된 엽서와 사진. 때가 되면 작고 동글동글한 글씨로 쓴 편지를 담아 보내기 위해 그녀가 손수 만들던 종이봉투와 그 위를 장식하던 습자지로 된 흰 종이꽃. 그녀의 주름지고 뭉뚝해진 손이 느릿느릿하게 이리 저리 주름을 잡고 나면 팔랑거리는 아기 귀저기 같은 밋밋한 흰 종이들은 금세 소담한 꽃 한 송이가 되어 피어났다.


  책상에서 몸을 돌린 그녀는 지난겨울쯤부터 거의 거동을 못하던 어머니가 창으로 들어오는 느릿한 정오의 햇살을 맞으며 졸고 앉아 있던 낡은 안락의자를 내려다보았다. 소파에 걸쳐진, 코가 몇 개 풀린 검은색과 붉은색이 교차되어진 낡은 목도리가 보였다. 그녀는 의자로 다가가 의자의 가장자리를 쓰다듬었다. 한참을 홀로 버려져 있던 의자는 그녀가 만지는 결을 따라 작게 먼지를 일으켰다. 먼지가 매워지는 기분이 들어 눈을 세게 깜빡이는 그녀의 눈에 작은 고양이모양 유리세공품이 몇 개 놓인 엔드 테이블위에 나란히 놓여있는 CD케이스가 보였다. 그녀는 테이블로 다가가 몇 개인가 뒤적이다가 아무거나 꺼내 들었다.

  속지는 어떻게 했는지 이미 없어지고 없고 덩그러니 CD 2장만 들어 있었다. 그녀는 누구의 CD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두 번째 CD를 꺼내서 CD케이스 옆, 언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드렸던 어머니의 자그마한 오디오플레이어에 넣었다. 잠깐의 잡음이 흐르고 이름 모를 여자 성악가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방을 채운 그녀의 목소리가 먼지와 함께 춤추듯 방안을 떠다녔다.


  이젠 너무 오래되어 기억들에 대한 확신조차 아련한 오래전 그날. 학교에서 일찍 귀가해 어머니가 만들어준 사과 주스를 마시며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싱크대에서 믹서를 닦으며 어머니가 흥얼거렸던 그 노래였다. 높게 올라가지 않는 목소리를 끌어올려 흥얼거리는 어머니를 보며 키득거리며 웃던 자신의 웃음소리가 생각났다. 그런 자신을 돌아보며 과장된 몸짓으로 마저 그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도톰하고 동그란 입술이 생각났다.

 


  그녀는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물이 추억만큼 먼지가 쌓인 어머니의 방에 깔린, 작은 꽃무늬가 수놓인 발판위에 소리 없이 떨어져 지워지지 않을 작은 자국을 만들었다.

 

 

 

- 어머니의 방, END.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7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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