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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다릅니까?


Section: 1. 손등을 바라보다.



  ‘이안스’는 오래된 형광등이 켜지듯 깜빡이며 정신이 들었다. 어슴푸레 뜬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자신의 양 다리와 양볼 옆을 가리고 늘어져 있는 자신의 엉클어진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이었다. 실내는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는지라 춥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 전기가 흐르듯 등 뒤로 짧게 한기가 지나갔다. 그녀는 뻑뻑한 눈을 깜빡거렸다. 눈이 다 떠지자 동공이 급하게 줄어들며 방을 가득채운 하얀 빛에 반응했다. 눈을 찡그린 그녀는 천장까지 하얀 정육면체의 방과 그 한 가운에 놓인 유광의 차가운 몸을 가진 테이블, 그리고 그 앞에 얌전히 앉은 자신을 천천히 인식했다. 

  이안스는 움직이기 힘든 불편한 몸을 틀었다. 어깨를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몸 쪽을 내려다보니 구속복에 고정된 양 팔이 몸을 끌어안으며 등 뒤로 결박되어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통째로 몸이 의자에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온몸의 관절이 뻑뻑해서 어깨도 깊게 숙일 수 없었다. 이렇게 앉은 모습으로 얼마나 잠들어 있었을까? 목 아래의 몸이 마비라도 된 듯 멍하다.

  그녀는 다시 연두색의 빳빳한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앙상한 몸을 내려다봤다. 바지 천이 단단히 내려 앉아 있어 마른 대퇴골이 돋보여 징그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작게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곧게 펴려고 애썼다. 겨우 목에 힘을 주고 얼굴을 들자, 흰 벽의 모서리 안쪽 위로 은색의 작은 카메라가 그녀를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초점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동그랗고 작은 렌즈와 그 옆으로 빛나는 파란 작은 전구 덕에 카메라는 입을 크게 벌린 외눈의 은색 구렁이 같다. 이안스는 못마땅한 눈으로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움직여 봐. 나를 물어뜯어 보라고. 그러나 카메라는 먹이를 노리며 몸을 숙인 뱀처럼 미동도 없다.


  어느 틈엔가 방 한쪽의 작은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흰 점프슈트에 은테 안경을 쓴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안스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작은 기억의 틈새로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엉망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뭔가를 말하던 그의 까맣고 작은 얼굴이 기억났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A5 크기 타블렛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한 것인지, 남자는 들어오면서도 눈을 떼지 않고 화면을 여기저기 두드렸다. 그는 화면을 향해 작게 말했다.


  “담당 ‘유리 지젤’. 케이스 H9020의 파일 오픈. 실행. 이안스 인...”

  “지젤 박사님.”


  이안스는 갈라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유리 지젤’은 자신을 알아보는 것에 놀란 것인지 걸어오던 발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뜨며 이안스를 향해 말했다.


  “네. 절 기억하나요?”


  지젤은 이안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타블렛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타블렛에는 하얀 바탕화면에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찬 서류파일창이 두어 개 열려 있었다. 이안스는 방안의 강렬한 불빛을 반사하는 짙푸른 눈동자로 타블렛의 하얀 화면을 응시했지만 아직 눈이 빛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눈앞의 파일의 글자가 번져 보여서 화면은 온통 뿌옇게만 보였다. 열심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안스의 머리 위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말할 기분이 드나요?”

  “...음- 으음-”


  빡빡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안스는 목을 꺾어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얀, 마치 차가운 눈 같이, 차갑고 하얀 천장. 그녀는 눈을 감았다 뜨면서 입을 움직였다.


  “네... 괜찮습니다.”

  “......”


  지젤은 말없이 처진 안경을 손끝으로 들어 올렸다. 그는 타블렛 화면을 만져 파일 몇 가지를 실행시켰다. 화면에 커다란 사진이 떠올랐다. 이 사진은- 


  “....‘시스’...”


  이안스는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스’. 길고 부드러운 눈.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밤색의 목을 조금 덮는 머리카락. 굳게 다문 입술과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흔들림 없는 까만 눈동자. 넓은 어깨와 단단한 몸.- 서른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도 막 성년이 된 소녀처럼 연약하고 작은 몸을 가진 이안스를, 덩치 좋은 시스는 자주 품에 안아주었다. 그가 이안스를 품에 안고 머리를 만져 주면, 얼굴을 기대고 있는 시스의 딱딱한 어깨는, 비가 내려도 해가 비추어도 한결같이 따뜻했었다.

  사랑받았던, 사랑했던, 그러나 그와의 관계는 이젠 화면의 픽셀의 쪼개짐만큼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 버렸다. 그 상념을 방해하며 지젤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억납니까?”


  이안스는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자유롭다면 화면속의 모습이라도 얼굴을 쓰다듬고 싶은데... 그녀는 몸을 최대한 굽혀서 바닥에 바싹 누운 타블렛 컴퓨터에 얼굴을 기댔다. 따뜻한 화면에 이안스의 뺨이 닿자, 빠지직- 작은 정전기가 느껴진다. 마치 화면속의 그가 살아 있는 듯이. 가만히 몸을 들고 지젤을 향해 고개를 든 그녀는 말했다.


  “저는...시스...를 사랑했습니다. 인간이 아닌 그를...”



***



  이안스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평생을 그래왔기 때문에 부모님은 하나뿐인 딸을 늘 걱정으로 대했지만, 그녀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바로 부모님 집에서 나왔다. 그러나 식물학부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급격히 건강은 악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치료와 요양을 위해 근교의 소도시로 이주하면서 칩거에 가까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그런 그녀를 위해 보내준 것이 생활보조형 안드로이드, ‘시스’. 바로 그였다.

  시스를 처음 보았을 때, 이안스가 처음 생각한 것은 소요전력량이었다. 대부분의 인간형 안드로이드들은 전력효율을 위해서 170cm를 넘기지 않는 신장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 기체는 얼핏 봐도 190cm가 다 되어 보이는데, 저렇게 큰 기체를 가진 안드로이드는 전력소모가 꽤 많겠는걸. 총 충전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안스가 그를 관찰하는 동안에도, 대기 모드인 듯 보이는 그는 거실 한중간에 덩그러니 놓아둔 소파 베드에 몸을 길게 눕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널찍한 의자의 손잡이 위에는 작은 책을 느슨하게 들고 있는 손이 편하게 놓여 있었다.

  이 안드로이드에게 최초로 어떤 말을 걸어야 할까, 이안스가 고민하는 사이, 그는 반짝 눈을 뜨더니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의자 옆 낮은 테이블에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그는 바닥에 다리를 내려놓고 이안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안드로이드는 자신이 움직이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이안스를 향해서 말했다. 음성버퍼를 거친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고 아득하게 울렸다. “이리와. 오고 싶으면.” 그 말에 주저주저 그에게 다가가자 시스는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깜빡임도 없이 뚫어져라 이안스를 바라보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기 어쩐지 쑥스러워, 이안스는 고개를 기울여 시선을 비꼈다.


  “널 뭐라고 부를까?”


  여전히 시선을 외면한 채로 이안스가 물었다. 안드로이드는 대답했다.


  “뭐든지, 네가 부르고 싶은 데로 불러.”


  안드로이드들이 모두 그렇듯, 호칭이 무엇으로 정해지든 그 역시 상관하지 않았지만 이안스는 그가 꽤 맘에 들었기에 자신이 불릴 이름을 그 스스로 정하게 하고 싶었다. 이안스는 다시 물었다.


  “너는 내가 뭐라고 부르면 좋겠는데?”

  “......”


  그는 이안스의 질문에 놀란 것처럼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이안스를 올려다보다가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놀라운데?”

  “뭐가?”

  “네가 나한테 그렇게 물어보는 게.”

  “뭐, 평범한 경우는 아니겠지만... 그냥 난 네가 맘에 들어서 그래.”


  그때 이안스가 입고 있는 옷은 폴리에스테르가 20% 섞인 면 반팔티셔츠와 얇은 베이지색 면바지였다. 그가 이안스의 허리를 바싹 당겨 안는 바람에 이안스의 하얗고 마른 팔이 그의 딱딱한 어깨위에 둘러질 때, 건조한 섬유들은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가 말했다.


  “그냥 ‘시스’라고 부르면 돼.”

  “‘시스’...”


  맞닿은 옷 아래로 느껴지는 그는 피부는 꽤나 서늘했다. 조금 몸을 떨고 움츠리자, 그는 조금 더 단단하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다 큰 어른이, 아이가 된 것처럼 누군가-그것도 남성체 안드로이드의-의 품에 안기는 게 부끄러웠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아서 모든 처지를 잊고 그냥 그의 품에 목을 기댔다. 어차피 이 집에는 이안스 자신과, 이제 막 깨어난 시스뿐이다. 시스는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줄 것을 처음으로 요구하며 이안스의 마른 어깨에 숨소리와 함께 소곤거렸다. 


  “어떻게 해줄까? 뭐 하고 싶어?”



  시스는 이안스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늘 미소 띤 얼굴을 만들었지만, 그는 전반적으로 표정이 없었다. 물론 호흡운동을 흉내 내어 일정속도로 움직이는 가슴의 선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깜빡이는 눈꺼풀과 속눈썹도, 정면의 모니터를 응시하며 가만히 손가락을 까딱이는 모습도 모두 근사하고 아름다웠지만 그에게는 전혀 인간미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흉내 낸다고 해도 결국 정교한 부품으로 기능하고 있는 기계장치일 뿐이니, 어딘가 마음의 거리감과 감정전달의 한계가 느껴지는 차가움이 있었다. 시스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에게 어색하게 대하거나 그의 존재를 괄시할 만큼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이안스는 시스를 좋아해 마지않았다.

  늦은 아침이든, 초저녁이든, 새벽이든, 문득 잠에서 깨어나 그를 찾아보면, 시스는 늘 외부 업무를 볼 수 있게 꾸며진 집의 제일 안쪽 작업실에서 꼿꼿한 자세로 책상 위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안스를 위한 기본 생활보조뿐 아니라, 외부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안드로이드인 시스는 이안스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와 외국어를 쓰며 화면의 사람들과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이안스는 자신의 전공인 식물학 외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병약한 신체 상태 때문에 대외적 활동이나 경제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자신을 위해 일해 주는 그가, 그리고 그를 이안스에게 보내준 부모님께 감사할 뿐이었다.


  간혹, 정말 아주 가끔이었지만, 이안스는 그와 잠자리를 가졌다. 안드로이드와 잠자리를 갖는 그녀가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가상현실이 아닌 물리적 섹스를 위한 안드로이드 서비스도 대중화되어 있었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체를 만드는 합법적인 기업체도 있었다. 시스의 기체는 섹스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인체의 모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한 문제점은 없었다. 물론 섹스토이 안드로이드가 아닌 업무용 안드로이드와 잠자리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이안스는 그와 몸을 섞는 것에 대해 이질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다. 또 이안스가 그러길 원할 때마다 그 역시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바싹 끌어안고 서둘러서 입술을 맞추면, 인형 같았던 얼굴의 시스는 마치 사람같이 움직였다. 이안스를 안은 그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빨간 얼굴로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 그의 등을 감싸 안으면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그의 완벽하고 매끈한 인공피부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정돈된 근육 위로 흐르는 열기와 땀. 프로그래밍 된 대화에서 비롯된 흥분을 흉내 낸 교성과 숨소리. 계산된 조건 반사에 의한 움직임에 맞추어 흔들리는 몸. 문질러지는 입술. 부딪히는 살결. 합쳐지고 나누어지며 상승하는 온도와 소리. 그 모든 것들은 시스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의 품에 안길 때면 이안스는 시스를 조금이라도 더 인간처럼 느끼고 싶어서 더욱 그를 잡고 놓지 않았다.

  시스는 사랑을 나누고 나서 모든 쾌감이 빠져나갈 때까지 이안스의 볼을 매만지고 이곳저곳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리고 “괜찮아? 이상하지 않았어?”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그러니 그가 혈액이 아닌 연료와 인골이 아닌 금속의 관절을 가진 영혼 없는 기계일지라도, 그녀가 그런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시스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쌓이고 그와 몸을 맞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안스는 자신이 만든 상아상을 사랑해버린 신화속의 왕처럼 그를 더욱 원하게 되었다.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8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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