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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갈증 - 외전


3. 에일델드리브 : 소원

 

  테이블 너머로 보이는 그의 단정한 머리카락이, 넓은 호텔룸에 흐르는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고개를 까딱거리자 수초처럼 하늘거리며 흔들린다. 나는 멍하니 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 사이 테이블 위에 놓인 큼직한 와인잔을 들어 거의 바닥이 드러나도록 급하게 술을 마셨다. 얼굴과 가슴이 후끈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를... 썼어요.”
  “음-”

 

  나른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고 있던 그는 신음소리처럼 작은 소리를 내고 나를 바라보며 궁금한 표정을 한다. 나는 긴장한 손가락으로 안주머니에 넣어 둔 시가 적힌 종이를 집어내서 펼쳐 든다.
  느릿느릿, 긴장한 목소리로, 그러나 한 단어, 한 단락, 신중하게 진심을 담아 그에게 단어 안에 숨겨둔 나의 진심을, 사랑을, 운명을, 다짐하고 맹세한다.

 

  시구의 마지막 단어를 읽고 나자, 미리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전축의 음악이 끝나고, 레코드판을 돌던 바늘이 직직거리는 노이즈를 내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며 레코드 판도 회전을 멈춘다.


  음악의 종료와 함께 이어지는 우리사이의 침묵, 나는 내 시에 숨긴 진심을 그가 알아주었으면- 내 질문에 응답해 주었으면, 기대하고 바라며 그의 눈가를 살핀다.
  테이블에 기댄 팔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은채 나의 낭송을 듣고 있던 에일델드리브는 목을 들고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멋지구나.”

 

  그는 웃는 얼굴이었지만 내 눈가는 긴장감으로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따끔따끔한 손바닥을 꽉 쥐고 목에 힘을 주어 쥐어짜듯 고백했다.

 

  “사랑...합니다.”
  “...알고 있다.”

 

  내 힘겨운 고백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능숙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내 시선을 피해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리는 가느다란 회피의 눈빛조차 아름답다.


  나는 잔뜩 긴장한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가 다짐하고 몸을 일으켰다. 나의 손에는 손바닥 길이만한 단검이 하나 들려 있다.

  나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있던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았지만 보지 못한 척 하는 걸까? 나는 그의 옆으로 가서 무릎을 바닥에 대고 주저앉아 자리에 앉는 그의 품에 몸을 기울이면서, 그대로 그의 명치에 칼을 꽂았다.

 

  “크윽!”

 

  갑작스럽게 뱃속을 파고든 통증에 깜짝 놀란 듯 급하게 숨을 몰아쉰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아직 그를 찌른 칼의 손잡이를 잡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 그 어깨에 바싹 얼굴을 대고 그의 목을 간절한 손길로 꽉 끌어안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창피하게 울 수는 없다. 나는 칼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이를 악문 다음, 끌어안고 있던 그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냈다.


  휘청거리며 밀려난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잔뜩 인상을 찡그린 그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깊숙이 찔린 칼 손잡이의 끝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가 거친 숨소리로 말했다.

 

  “뭘,,, 한 건가...?”

 

  그의 의아한 표정에 또다시 눈물이 나올 것처럼 숨이 벅찼다. 나는 침착해 지려고 애쓰며 말했다.

 

  “사랑해요. 에일델드리브. 내가 구해주겠습니다. 내가..내가 당신을 구해줄 겁니다.”
  “으읏...”
  “당신을 사랑합니다...당신의 영원한 저주를 끝내겠습니다-”

 

  에일델드리브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날 잠시 바라보다가 명치를 깊숙이 찌르고 있는 칼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뽑아냈다.
  떨그렁,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말끔한 날을 가진 무거운 단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벌어진 상처를 비집고 피가 스며 나오는지 그의 흰 셔츠가 느물느물 밀려 나오는 검은 피로 넓게 젖어 들었다. 에일델드리브는 상처에 손바닥을 덮어 눌렀다.


  곧 쓰러 질 것처럼 몸을 굽히고 있는 에일델드리브가 눈을 질끈 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테이블에 기대고 있는 꽉 쥔 주먹의 관절에 하얗게 힘이 들어갔다.

 나는 말아 쥔 주먹으로 떨리는 입술을 누르고, 슬프지만 행복한 얼굴로 휘청거리는 에일델드리브를 바라보았다. 안녕, 내 사랑.-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에일델드리브가 쥐어짜는 신음소리를 길게 내는가 싶더니 잠시 후, 그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당장에 에일델드리브를 끌고 갈 것 같던 죽음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는 멀쩡한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

 

  그런 에일델드리브의 모습을 나는 멀뚱해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완전히 멀쩡해진 에일델드리브는 피로 흠뻑 젖은 셔츠의 앞섶을 곤란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멍한 얼굴로 겨우 말을 꺼냈다.

 

  “...왜지?”
  “왜 라니?”

 

  나의 절망한 목소리에 에일델드리브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힘이 빠진 턱을 떨고 있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난 .. 난 당신을 죽일 수 없군요.”

 

  에일델드리브는 짧게 숨을 뱉고 말했다.

 

  “...난 너를 좋아한다. 너와 있는 시간들은 늘 즐겁지.”
  “하지만.. 난 당신을 죽일 수 없었어요.”

 

  그는 나의 앞으로 한걸음 걸어왔다. 나는 허둥지둥 뒷걸음질 쳤다. 얼간이 같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그가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잖아. 누구도 날 죽게 할 수 없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말이죠.”

 

  그는 고개를 다정하게 기울이고 갸웃거렸지만 나의 얼굴은 물에 젖은 것처럼 순식간에 슬픔과 절망으로 뒤덮였다. 내 상처받은 목소리는 어린 아이의 것처럼 가늘고 연약했다.

 

  “나는... 당신을 죽이기는커녕... 아주 작은 고통도 주지 못했습니까?”

 

  에일델드리브는 심상치 않은 나의 목소리에 다시 다정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

 

  “나도 아프긴 하다. 앞으로 갑자기 이러지마.”

 

 그러나 그의 달콤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에도 내 구슬픈 목소리의 절망은 더욱 깊어 질뿐이었다. 나는 웃었다.

 

  “아프다고? 당신이... 아픈 걸 안다고?

 

  웃고 있었지만, 슬펐다. 슬프고 절망적일만큼 수치스러웠다. 난 그에게서 계속 뒷걸음질을 쳤다. 요란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진 베란다 창턱을 넘어, 호텔 룸의 베란다 난간이 내 등 뒤를 막아서 덜컥 내 걸음이 멈춰질때까지 계속 그에게서, 이 치욕스러움에서 도망쳤다.

 

  겨울이 한창인 날이었는지라 포근한 함박눈이 내려 외부 베란다 바닥에 도톰히 쌓여있었다. 에일델드리브는 곤란한 표정으로 허둥거리는 나를 보고 있다가 다시 미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쪽으로 와. 거긴 너무 춥지 않은가.”
  “....”

 

  나는 그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웃고 싶었지만, 내 마음도, 얼굴도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난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등을 난간 너머로 넘겼다.

 

  이어지는 추락, 귓가를 가득 채우는 소란스러운 바람소리, 눈앞의 하얗고 검은 도시의 빛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먼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정신이 없다. 아무것에도 닿아있지 않은 내 손발이 허공에서 휘적거리고 다리를 감싼 검은 슈트의 옷자락이 정신없이 펄럭인다.


  그리고-  나는 몇 초 후, 검은 바닥에 얼룩을 하나 더한 허무한 모습으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파, 머릿속에 순식간에 든 생각은 그것 하나뿐이다. 근데 그 통감마저도 순식간에 아득해졌다. 그러나 둔해지는 감각에도 온몸에 붙이 붙은것 같이 뜨겁고 머리에 딱딱하고 묵직한 베개를 고인듯 욱신거리는 감각이 전해했다. 목에 걸리는 뻑뻑한 숨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다.

  까맣네. 물기가 가득한 눈앞에 빛과 어둠으로 불빛들이 이리저리 일렁거린다.

 

  흐릿한 시각 앞에 그의 하얀 얼굴이 떠오른다. 이건 환상인가? 아냐, 에일델드리브야. 그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크고 깊은 그의 눈길이 슬프다. 그래 환상이야. 이건 꿈 일거야. 에일델드리브의 환상이 나를 향해 입술을 벙긋거린다. 그러나 웅웅거리는 귓가에 내 끈질긴 심장소리만 들려온다.

 

  ‘왜 그랬니?’

 

  그가 머릿속으로 말을 건다. 그의 검은 눈이 더욱 어두워진다. 나는 겨우겨우 입가를 끌어 올려 나의 환상에게 웃는다. 피에 젖은 이빨과 잇몸에서 비릿한 향기가 코끝으로 흘러내린다.

 

  ‘내가 이렇게 코앞에서 피를 뱉어내도 당신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는군요. 갈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나요? 역시 내 피를 원하지 않는군요.’

 

  그는 암갈색 눈에 잔뜩 슬픔과 우울함을 묻힌 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나,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밭은기침 밖에는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나의 환상에게서 눈을 돌려 검은 하늘과 나를 연민하며 내려다보는 희게 번진 달을 바라보았다. 생명이 흐려지고 불이 꺼져간다. 나는 마지막 힘을 모아 내 생명의 심지를 돋우고 바라고 또 바라는 기원을 말한다.

 

  ‘신이여! 영원히, 그를 영원히 살게 해주세요! 내가 주지 못한 끝을 누구도 주지 못하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가 누구도 사랑하지 않도록. 이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게 해주세요. 부디, 부디 그를...’

 

  허무한 바람이 끝나고,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 제대로 된 생각도 그가 내 머릿속에 밀어 넣는 목소리도, 더 이상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창문도 없고 불빛도 없는 방안에 갇히듯, 나의 눈도 내 가슴속도 검게, 검게 어두워 졌다.

 

 

- 외전 3. 에일델드리브 : 소원,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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