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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갈증

16. 끝에서 끝으로

 

 

 

  “하아- 하아-”

  겨울의 설악산 산행의 막바지에 거의 다 도달한 해영은 폐 안에 격하게 들어차는 호흡을 가쁘게 내쉬면서 마지막 걸음을 미끄러운 바위 위에 내딛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쏟아지던 눈은 많이 잦아들었지만 대청봉 꼭대기에 부는 눈바람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펄럭이는 패딩의 모자를 추스르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바위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다.

  정상에서는 적잖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한답시고 소란을 떨며 떠들고 있었지만 해영의 귓속에는 바람소리만 들렸다. 여윈 볼이 빨갛게 얼은 해영은 가방을 발 근처에 내려놓고 점퍼 깃을 여미며 가늘게 몰아치는 눈발사이로 설악산의 흐릿한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발을 조이는 등산화의 끈을 느슨하게 풀자, 욱신거리는 발의 통증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혹사했던 육체와 폐 기능에 조금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추위가 제대로 느껴졌다. 해영은 땀이 날아가며 서늘한 목을 움츠렸다.

  해영이 이 추운 겨울을 택해서 설악산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몇 년 전, 설경사진전을 보러 가서 나눴던 호준과의 대화를 기억해 냈기 때문이었다.


  [대학 다닐 때, 설악산의 설경을 찍으러 갔다가 거의 죽을 뻔했었어.]
  [근데 왜 겨울 산까지 기어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난리야?]
  [아름다우니까...]
  [너도 참... 그래서, 그 아름다운 산 사진은 많이 찍었어?]
  [응... 정말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어...]


  노란 조명이 떨어지고 있는 눈꽃 사진을 보며 중얼거리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해영을 돌아보고 호준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제일 웃긴 게 뭔지 알아? 고생고생해서 맘에 드는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하산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메모리카드를 넣어둔 팩을 잊어버린 거 있지.]

 

  해영은, 속상하고 허무했을 일을 정말 신나는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하던 호준의 희미한 미소가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다.

  사사로운 것부터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것까지, 그의 살아온 방식대로 모든 절망을 받아들였을 그는 언제나 연약한 미소로 웃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해영은 그런 그가 싱겁다고 생각하고 마주 웃고 말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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