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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갈증


00. 시작




  멀리서 보면 고압 철탑위에 세워둔 대형 피뢰침이라고 억지를 부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장신의 남자였다. 몰아치는 바람에 간간히 흐트러지는 어깨를 조금 넘기는 길이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 봄에 접어드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낡고 묵직한 검은색의 스웨이드 롱코트는 그의 넓은 어깨에서 종아리까지 뚝 떨어져서는 바람에 펄럭였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높은 곳에 올라가기는커녕 저렇게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겠지만, 가느다란 선의 하얀 얼굴과 푹 꺼진 검고 긴 눈, 빛에 따라 번쩍이고 있는 맑은 눈동자. 그리고 슬쩍 열린 코트 사이로 보이는 흰 와이셔츠 아래로 가슴을 움직이며 숨 쉬고 있는 그는 분명 살아 있는 사람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긴 시간 눈의 깜빡임이 없어도 변함없이 번뜩이는 두 눈과 지는 해의 붉은 빛에 연갈색이 되어 빛나며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그가 분명 보통의 인간이 아님을 나타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저 특이한 느낌의 사람으로 보이는 그는 인적이 없는 너른 들판 위 홀로 있는 철탑 꼭대기에 서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을 테지만, 지나가는 누구라도 그를 발견했다면 당장 119에 전화라도 했을지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거나 그는 하루 종일 고압철탑의 아슬아슬한 꼭대기 위에 서있었다. 동쪽 평야에서 해가 뜨는 하얀 시간부터 서쪽 산등성이를 천천히 타고 내려가며 해가 지는 붉은 시간까지 12시간이 넘도록 손가락도 하나도 까딱 하지 않고 저 멀리 있는 고속도로와 산을 통과하는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차들을 눈으로만 쫒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산 너머로 넘어가버리고 붉은 그림자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나자 이리저리 부는 바람으로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치우려는 듯 그가 드디어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

 

  처음 숨을 쉬는 것처럼 크게 한숨을 내쉰 그가 철탑 앞 허공에 발을 뻗었다. 그리고 서있는 모습 그대로 중력의 속도에 맞추어 급히 하강했다. 그러나 그의 몸이 땅에 막 충돌하기 직전 가속도를 무시한 것처럼 급하게 속도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땅위에서 10cm 정도의 간격을 남기고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남은 10cm를 내려와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섰다. 다시 흐트러진 머리를 넘긴 그는 평소의 버릇대로 혼자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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