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Please.
Please, Please.   C는 잠이 아직 덜 몰려나간 얼굴로 세면대 앞에 서서 길게 하품을 했다. 목을 돌려 뚜둑, 하고 소리를 내자 조금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양치컵에 썰렁하니 꽂아진 칫솔을 집어 들고 구겨진 치약튜브를 꾹 눌러 짜서 치약을 발라 이에 가져갔다.   입 안 가득. 그리고 비공을 타고 싸한 박하향이 올라온다. 텁텁한 입안을 개운하게 헹궈주는 역겨운, 혹은 상쾌한 치약 맛..
Please, Please. Fiction/Pieces-단편 2018.02.21 00:15

드디어
드디어   소년은 벌써 3일째, 폭이 좁은 갓길의 외진 버스정류장에 해가 질 무렵부터 서 있었다. 서 있는 내내 허공을 향하고 있는 듯 보이는 그의 시선은 4차선 너머 검은 들판을 가로질러 멀찍이 서있는 높은 공장굴뚝의 점멸하는 붉은 전구를 향해 있었다.   똑같이 생긴 세 개의 거대한 굴뚝 꼭대기와 그 몸통 중간에 두 개씩 붙어 서로 번갈아가며 깜빡거리는 붉고 노란 불빛 때문에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보이는 저 구조물에..
드디어 Fiction/Pieces-단편 2018.02.20 22:54

5분
5분   여름비가 내렸다. 아침나절은 잡아먹을 듯 푹푹 찌는 맑은 하늘이더니, 10시도 채 지나기 전부터 순식간에 검어진 하늘이 찡그리다 못해 비를 툭툭 떨궜다. 그래도 나는 온종일 비가 내렸으면 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의례 두통도 따라와.- ‘그’가 하던 말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가 내렸으면 했다. 어차피 덤벙거리는 그이지만, 오늘은 날까지 맑았으니 당연히 우산을 챙기지 않았을 것이고 오후..
5분 Fiction/Pieces-단편 2018.02.20 22:35

어머니의 방
어머니의 방   그녀는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어머니의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달 동안이었더라, 의도한바 는 아니었지만 - 아니 사실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방에는 발자국 하나 들여놓기는커녕, 열쇠라도 잃어버린 사람처럼 문고리조차 잡지 않았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어머니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 없는 방을 차지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먼지가 방문의 움직임에 맞추어..
어머니의 방 Fiction/Pieces-단편 2018.02.20 22:21

Counting Pulses
Counting Pulses   J는 까마득한 댐의 높은 난간을 끙끙거리고 넘어가서 디딘 좁은 턱에 뒤꿈치만 겨우 걸치고 뒤로 기댄 난간에 양팔을 걸쳐 꽉 잡고 섰다. 이제 가을이 다가오는 서늘한 계절의 바람에 얇은 남방만 입고 선 그의 몸이 불규칙적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아래턱이 덜덜거리는 그의 마른 얼굴. 야윈 뺨은 버석버석하고 눈은 붉게 충혈 되었지만 눈물도 물기도 없는 눈이 불안하게 깜빡거린다. 난간을 쥔 손을 쥐었다 피..
Counting Pulses Fiction/Pieces-단편 2018.02.20 21:43

20170114
1. 가슴 안이 따뜻하다. 순간순간, 냉소와 회의와 비관과 우울이 가슴속에 성에처럼 끼다가도,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진다. 내 젖은 나무가 드디어 바싹 말라서, 적재의 불씨를 얻어 제대로 타고 있는가 보다. 2. 나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 내 안에서 불멸할 영감의 핵. 사랑. 단지 사랑. 사랑이, 나의 안에 불을 지피는 발열점이 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수없이 변하는 와중에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20170114 H/Warm 2017.01.15 00:40

To Every Captive Soul.
  To every captive soul, Hannibal OST, Hans Zimmer 모든 사로잡힌 영혼들에게, 영화 한니발 OST, 한스 짐머       이 곡은 아래의 말러 교향곡의 주제를 인용하여 만들어진 곡이다. 원곡의 우아한 주제를 잘 사용한 아주 근사한 곡이라 생각된다. 작품 내의 로맨틱한 감정을 잘 나타낸 곡이고, 아주 좋아한다. (범죄 부분에 가려져 있을뿐,..
To Every Captive Soul. Memento 2016.09.10 20:45

20160906
1. 안녕안녕, 벌써 가을, 치열하게 여름이 지나가고 벌써 가을이 왔다. 덥다고 앙앙거리던 날들은 어느새 지구의 공전과 함께 시간너머로 사라지고 가을이 도착했다. 요새는 일단, 생업때문에 치열하게 살고 있다. 일주일 내내 나가는게 아니라고 해도 역시 일은 일인지라, 정신이 없다면 주로 일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 인간관계 때문에도 다소 힘든 면도 있지만, 그럭저럭 잘 이겨나갈수 있는 정도의 피로이다. 견딜수 없어, 나자빠질테야, 정도는 아니..
20160906 H/Warm 2016.09.07 00:45

묵호
  묵호(demo) 2014.7 - 함병선   묵호 그곳으로 난 떠나요 요즘 많이 지쳤거든요난 또 어둡고 황량했던 그때가 기억이 나나 봐요   버스에 오르니 잠이 쏟아져 낯선 음악을 귀에 꽂고 이름 모를 그를 그려보고추위에 몸이 조금씩 떨려오네 살아있나 보네   묵호 그곳으로 난 떠나요 요즘 많이 지쳤거든요난 또 어둡고 황량했던 그때가 기억이 나나 봐요   술 한 병에 마음이 무너지는데..
묵호 Drawing/illustration 2016.08.04 13:1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