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릅니까? 1-7. 손등을 바라보다

하달리 | 2018.03.31 22:44


무엇이 다릅니까?


Section: 1. 손등을 바라보다 - 07



  흰 방안에서 몸을 숙이고 펴기를 반복하는 이안스를 건너편의 어두운 방에서 창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사람들은, 방문이 열리고 지젤이 들어오며 겨우 하나 켜 놓은 희미한 조명에 그의 모습이 비치자 일제히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는 벗어 들었던 안경을 다시 쓰면서 짧게 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진행이 안 될 것 같은데요. 적당한 반응과 답을 도출해서 대화의 주변만 빙빙 돌아요.”

  “크흠...”


  한쪽 손등으로 턱을 누르며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던 반백의 남자는 꾹 다문 입술사이로 신음 한 후, 지젤 박사를 향해 까딱까딱 손짓을 해보였다. 노년의 외형을 가진 그 남자는 안드로이드를 비롯한 다양한 인공생명체의 윤리강령과 사법 집행 등을 통합관할하고 있는 ‘통합윤리부’의 부장검사였다. 통합윤리부 산하 '인공생명체 행동연구처'에 수석 연구원으로 속해 있는 지젤 박사가 부장 검사의 옆으로 바싹 다가서자, 그는 지젤의 귓가에 소곤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내 사람들의 뒤에 한발자국 물러선 채,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큰 키의 남자가 벽에 기댔던 모습 그대로, 여전히 밀담을 나누고 있는 지젤 박사를 향해 입술만 움직여서 말했다.


  “현장의 사진을 보여줘 보십시오.”

  “아, 사진... 그러니까, 그게... 몇 번이고 보여주려고 했었습니다.”


  지젤은 부장 검사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눈썹이 여우 꼬리처럼 두툼하게 축 쳐진 판사의 사나운 눈매가 커졌다. 남자보다 그가 먼저 지젤을 향해 날카롭게 물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쓰면서 상황을 외면하고 있어서 말이죠. 사진 한 장 보여주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하, 나 참. 쉽게 가는 게 없군. 도대체가.”


  검사는 조명이 미치지 않는 그늘 속에서 자기들끼리 눈짓을 교환하다가 헛기침을 하는, 이안스가 소속된 회사 사람 두 명을 번갈아 노려보고 마지막으로, 더욱 못마땅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정면의 유리 너머, 이제는 테이블에 몸을 숙이고 엎드려 있는 이안스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구속복이 뒤로 꽉 조여 묶인 탓에 어깨와 옆구리가 저려오기 시작했지만, 이안스는 억지로 몸을 숙여 테이블에 뺨을 바싹 대고 엎드려서 연이어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넌덜머리나는 슬픔의 지루함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숨을 그만 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그녀가 그렇게 잔뜩 인상을 쓰고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이마를 테이블에 비비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사람이 방에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그러나 이안스는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이어 의자다리가 바닥에 끌리는 마찰음이 나고 테이블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템페.”

  “!!”


  이안스를 템페라고 부를 사람은 이제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테이블 건너편, 시스가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때보다 좀 더 긴 머리카락. 피곤해 보이는 얼굴, 근심이 깊게 눌린 어두운 눈가. 이안스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기침을 토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스...!!”

  “그래. 나야.”


  이안스는 반가움에 몸을 일으켜 그에게 가려다가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물론 의자에 몸이 고정되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이전에 시스가 알던 ‘템페’가 아닌 지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 모든 구속을 풀고 그에게 달려들어 안긴들, 키샤는, 지난날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반가움으로 빛났던 시선을 푹 숙이고 이안스는 중얼거렸다.


  “....미안해.”

  “뭐가?”


  짧게 물었지만, 탓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쿠션처럼 부드럽게, 봄의 공기처럼 다정하게. 그의 대화 프로그램은 억양을 높이거나 빠르게 하는 법이 거의 없다. 이안스는 ‘내가 키샤를...’ 목까지 올라왔던 말을 삼키고 그의 시선을 피해서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날... 네가 다시 돌아왔던 날...”

  “...이제 기억나?”

  “응... 뭐... 그것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어디에 있어?”

  “그대로. 그냥 ‘우리’집에 있어.”


  우리집. 그들이 함께 있던 공간을 여전히 이안스와 시스가 포함된 공간으로 불러주는 다정한 모습에 그녀는 동요되는 감동을 외면하려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저 다정함은 모두 프로그램이야. 이안스는 고개를 털어 보이고 목을 들었다.


  “시스, 있지. 나...”

  “잠깐.”


  그녀의 말을 바로 자르며 시스가 말했다. 허리를 똑바로 세운 그는 목소리를 조금 크게 했다.


  “템페. 나한테 약속 해줄래?”


  뭐든지, 뭐든지 할게. 약속이든 뭐든,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이안스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을 마주보는 시스가 턱을 당겨 눈을 더 크게 뜨고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다 믿어 줄 거지? 내 말, 끝까지 다 들어줄 거지?”


  그녀의 '시스'가 말한다. 하얀 빛에 반사되어 더 매끈해 보이는 그의 피부는 더욱 비현실적이다. 이안스는, 아니 템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든지. 무슨 말이든지. 다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던 시스가 말했다.


  “그럼 이걸 봐줘.”

  시스는 테이블위에 버려지듯 놓여 있던 타블렛 컴퓨터를 끌고 와서 이안스의 바로 앞에 똑바로 놓았다. 그리고 몇 번의 클릭으로 사진 세장을 꺼냈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스의 시선을 따라,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던 이안스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사진이 떠올라 있는 화면을 바라보는 이안스의 눈이 점점 더 커다래졌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화면만 바라보고 있던 이안스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뭐..야... 이거?”

  “그냥 봐줘. 이 사진.”

  “이거..뭐야? 뭐야?... 뭐야, 이거?”


  이안스가 망가진 기계처럼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했다. 화면에 떠있는 세 장의 사진 중 하나를 시스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 번 두드리자 12인치 가량의 화면에 사진이 크게 들어찼다. 시스는 타블렛을 조금 더 이안스 쪽으로 밀었다. 그 움직임에 맞추어 그녀의 몸도 뒤로 물러나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굳은 표정의 시스가 물었다.


  “사진이 보여? 알아보겠어?”

  “어?... 아.. 나, 나는- 몰...어... 그게...아니.... 나..는. 난-”


  말을 더듬으면서도 여전히 화면위의 사진에 사로잡혀 있는 이안스의 까맣게 열린 눈동자가 두려움과 혼란으로 흔들거리자, 사진이 떠있는 타블렛의 디스플레이가 이리저리 일그러지며 깜빡이기 시작했다.


  “템페! 그러지마!”


  시스의 짧은 외침에 이안스는 반짝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다정하던 눈썹사이에 잔뜩 찡그린 주름을 잡은 그가 그녀에게 애원했다.


  “제발, 그러지마. 그러지마.”


  시스는 차가운 테이블 너머로 급하게 팔을 뻗어 잔뜩 굳은 이안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지마. 더 이상 그러지마.’ 이안스의 시선을 마주보며 그는 계속 눈으로 애원했다. 

  이안스의 크게 뜬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벽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창백해 보이는 그녀의 뺨을, 시스는 어깨를 잡았던 손을 움직여 천천히 쓰다듬었다. 슬픔과 두려움으로 잔뜩 경직되었던 그녀의 표정이 볼을 쓰다듬는 시스의 손길에 금세 일그러졌다, 겁먹은 아이처럼 입과 코를 일그러뜨린 그녀의 차가운 뺨을 연신 문지르며 시스가 말했다.


  “템페. 진정해. 자, 이 사진, 보이지?”


  입술 끝을 늘이고 있던 이안스는 심호흡을 하듯 숨을 길게 내쉰 다음, 다시 눈을 내리깔고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 시선이 닿고 흐릿하던 것들이 점점 선명해 보이자, 그녀도 모르게 크게 침이 삼켜졌다.

  시스의 희고 긴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사진의, 이 짓눌린 붉은 덩어리. 것이 혹시 키샤의 얼굴 일까? 사건현장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선명한 이미지에는 조수석에 쑤셔 박히듯 늘어져 있는 여자의 몸이 찍혀 있었다. 산산조각난 차창의 유리조각 파편들과 함께 붉은 핏물로 엉망이 된 흰색 블라우스와 회색 타이트스커트를 입은 가녀린 몸이 비스듬히 좌석에 눕혀있고 양팔은 던져진 것처럼 아무렇게나 늘어져있었다. 그녀의 어깨위에 올라가 있어야 할 목과 머리, 아니 목과 머리였었을 부분은 큰 압축기계로 눌린 것처럼 짓이겨져서 조수석 등받이 뒤로 넘어가있었다. 그녀의 하얀 목은 녹은 것처럼 흐물거리며 머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등 뒤쪽으로 휘어있었다.


  “...이거...내가 그런 거야?”

  “......”


  대답이 있어도 없어도 그건 ‘그렇다.’ 일 것이었다. 팔이 자유롭다면 이 끔찍한 화면을 띄운 기계를 벽으로 집어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마.] 시스가 애원했으니까. 그녀는 눈을 꽉 감고 목을 돌려버렸다. 쥐어짠 것 같이 시작과 끝이 갈라진 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템페... 날 봐.”

  “키샤랑... ‘사귀고’ 있었어?”


  ‘사귄다’라는 단어도 정확한 언어 선택은 아니다. ‘사귄다’라니, 우스꽝스러운 서술표현이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다른 말로 선택할만한 것이 없었다. '내가 키샤와 너 둘 사이에게 방해가 됐어?' 아니, 그건 너무 슬프잖아. 이안스의 말에 짧게 내쉬는 숨소리로 그가 급하게 답했다.


  “그렇지 않아, 템페.”

  “...이런 상황까지 와서 속고 싶지 않아.”

  “그런 거 아니란 말야. 우린 그냥... 그냥 동료였어.”

  “됐어... 그만 둬.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눈을 감은 것으로 모자라서 고개를 꺾어 잔뜩 외면하고 있는 이안스를 보며 시스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그러쥐었다. 테이블에 팔을 기댄 시스는 고개를 숙인채로 웅얼거리며 말했다.


  “키샤는 ...회사 동료야. 그녀는...”

  “회사 동료? 시스, 의료진이 있는 회사에서 일했어?”

  “...내 말 좀 들어봐, 템페.”

  “그냥 친구라고 말하고 있는 거냐고.”

  “...그래. 그냥 친구.”

  “근데... 근데 왜 그랬어?”

  “템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제발 나를 좀 봐.”


  이안스는 그의 애원이 깃든 목소리에 결국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흐릿한 것이 있는 것처럼 눈앞의 모든 것이 일렁였다. 불안정한 시점 너머에 심각한 얼굴을 한 게 분명한 시스가 이어 말했다.


  “제발, 이제 더 이상 이러지 말고...”

  “그냥, 그냥 혼자 놔둬.”


  너무 작게 말해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시스는 타블렛을 옆으로 치우며 앞으로 몸을 숙이고 이어서 말했다.


  “템페, 이제 그만하자. 그만 ‘수면’하자.”

  “...수면? 자자고? 지금 자라고 말하는 거야?”


  엉뚱한 소리를 하는 그를 돌아보며 이안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늘 지혜로워 보이던 그의 눈이 어느 때 보다도 아둔해 보였다. 잠이나 자라고? 그래, 애써 모든 것을 잊고 잠든 것처럼 있던 나에게 키샤의 이런 사진을 보여줘서 억지로 현실로 끌어 낸 주제에. 다시 자라고? 그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고 있으니 괜한 원망감에 등줄기가 서늘하고 목 아래가 먹먹해졌다. 이안스는 어지러운 머리를 털어 내고 기침을 했다. 갈라지는 따끔한 목을 가다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

  “안 돼, 템페, 그만해. 이제 끝내야 해. 네가 도와줘야 해...”

  “싫어. 너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넌 나를 속였어. 그리고 지금도 속이는 거지? 키샤와 친구였다고? 내가 바보 같아? 나가. 너야 말로 가서 충전기에 연결해서 잠이나 자!”


  발갛게 붉어진 볼로 악을 쓰는 그녀의 목소리 뒤로, 천장에 촘촘히 붙은 전구들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의 타블렛 컴퓨터도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꺼졌다. 목을 들어 천장을 돌아본 시스가 다시 이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템페. 내 말 믿어 준다고 했잖아. 이러면 안 돼. 당장 멈춰...”

  “네 거짓말까지 믿어주진 않아!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나가...나가..나가라고!”

  “템페, 내 말을 들어, 네가-”


  시스가 뭔가 더 말하려는 순간 문이 급하게 열리며 흰 점프스튜의 덩치 좋은 남자 두 명이 서둘러 들어와 시스를 저지하며 자리에서 억지로 일으켰다. 시스는 둘의 손에 끌려가듯 나가면서도 소리치며 말했다.


  “이제 그만 멈춰야 돼! 템페... 이안스 인듀-”

  “...아냐, 아냐- 아니야아!!!”


  시스가 악을 쓰는 동안에도 고개를 휘저으며 중얼거리던 이안스가 결국 목소리를 높여 비명 같은 고성을 내지르자, 그녀의 목소리가 방 전체에 윙윙거리는 메아리를 남겼다. 시스와 남자 두 명이 문을 닫은 직 후, 테이블위의 타블렛은 날카로운 전자음을 길게 내더니 쇼트서킷을 일으키며 노릿한 냄새와 함께 회색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리고 방을 하얗게 비추고 있던 여래개의 조명들이 큰 소음과 함께 유리 가루를 뿌리며 일제히 꺼져버렸다.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8078 

Copyrights ⓒ 2010 HADALY All Rights Reserved.

Fiction/무엇이다릅니까
2018.03.31 22:44
COMMENTS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