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릅니까? 1-6. 손등을 바라보다

하달리 | 2018.03.27 23:01


무엇이 다릅니까?


Section: 1. 손등을 바라보다 - 06




***


  “죽었나요?”

  “...?”

  “키샤... 말이에요.”

  “아, 네. 살기 힘든 상황이었죠. 여러 가지로.”


  지젤의 말에 이안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지젤은 입맛을 다시며 몇 개의 사건현장 사진을 불러내 타블렛의 화면에 띄웠다. 지젤은 수년전, 신체의 많은 기관을 사이보그화 하면서 눈물샘과 미세신경을 일부 제거한 덕에 눈물과 웃음이 사라져버린 만큼, 웬만한 일에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었지만 그날의 사고 현장 사진을 보고 있자, 자기도 모르게 왼쪽 눈 아래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옆으로 시선을 떨어뜨린 텅 빈 표정의 이안스와 화면 위 떠오른 현장 사진을 번갈아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사고를 낸 당사자가 저래서야... 겨우 입을 트나 했더니 아직도 저 모양이다. 그의 한숨소리를 들었는지 이안스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원색적인 일에 안드로이드가 관련돼서 사람이 죽게 된 경우는 흔하지 않겠죠.”

  “네. 확실히 아주 없지는 않지만, 이런 케이스는 꽤나 드물죠.”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했죠? 3달? 그 동안 저는 이러고 있었나요?”

  “....”


  그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중지 손가락 끝으로 이마를 세게 몇 번 문지르며 입을 벙긋거리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쪽의 경우는 사건을 외면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했기 때문에... 사건현장 사진은커녕 피해자의 사진조차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시간이 약간 경과한 후에는 사건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자극에서 자신을 단절시키더군요. 아까도 말했지만, 물리적인 접근에도 당신은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당신과 키샤 리버스와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할 때-”


  그의 말을 잘라내듯 그녀가 급히 끼어들었다.


  “밀접한 관계 같은 건 아니었어요. 그녀는... 키샤는... 제 주치의였을 뿐이에요. 저에게 그녀는 단지... 단지 친절한 사람이었을 뿐이었어요.”

  “...그래요?”


  잠깐 말을 멈췄던 지젤이 기가 막힌 듯, 바람 빠지는 숨소리로 웃으며 파악하기 힘든 묘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죽음에 대한 사건이나, 그걸 야기한 게 자신이라는 걸 왜 그렇게 최선을 다해 부정해 온 겁니까?”

  “......”


  그의 말에 아직 답을 못 찾은 이안스는 몸을 뒤로 기댔다. 길게 편 팔을 테이블에 짚고 있던 지젤이 이안스가 뒤로 기대는 것에 맞추어 몸을 앞으로 더 기울이며 짜증을 담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이것 봐요, 당신은 키샤 리버스를-”


  그러나 또다시 그의 말을 재빨리 자르며 이안스가 말했다.


  “난, 난 그녀에게 화가 난 상태였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난 이유는- 그러니까- 시스 때문이었습니다. 내게서 그를 빼앗아 간 게 그녀라는 걸, 그걸 막 인지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분노의 대상의 존재감 유무를 떠나서 그렇게 살의가 생겨났던 거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상대가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사건은 늘 유약하게 살았던 저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그것 때문에 제어하기 힘든 방어기제가 발현 되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즉, 그녀의 ‘죽음’이 아니라 그녀를 ‘살해’한 것에서 도망쳤다는 표현이 맞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맞지 않습니까?”


  자신의 상태를 정리해서 서로가 납득할 수 있도록 결론내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지젤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네.”

  “그나저나,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군요. 문장의 느낌이라든가.”

  “....말투?”

  “아닙니다.”


  그는 손사래를 치고 나서 다시 타블렛에 열심히 무언가를 기록했다. 별다른 설명 없는 그의 행동에 불안해진 이안스는 서둘러 자신을 변호하듯 말했다.


  “시스를 유혹하는 누군가가 있고 그게 누군지 내가 알았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시스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그냥 두고 보진 않았을 겁니다. 다만-”

  “다만?”


  시선도 주지 않은 그가 건성으로 반문하는 것에 이안스는 다시 의기소침한 얼굴로 돌아가서 고개를 조아리며 더듬었다.


  “그, 그때는 많이 아팠어요... 열이 났고.. 몸이 여기저기 많이 아팠고... 열 때문에 정신도 몽롱하고... 어쨌거나 제정신이 아니어서 좀 과격해졌던 것뿐이에요.”

  “....”

  “그래서...감옥이 아니라 이런 곳에 온 거 아닌가요?”


  그녀는 자신의 구속복을 내려다보았다가 긍정을 구하듯 다시 지젤을 바라봤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없이 지젤은 목소리를 환기하며 일어났다.


  “잠시 쉴까요? 뭔가 마실 거라도 가져다 드리죠.”

  “...괜찮아요.”


  다시 깊게 고개를 묻고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를 무표정하게 보던 지젤은 타블렛 피씨를 그대로 둔 채 안경을 닦으며 밖으로 나갔다.


  방에 혼자 남겨진 이안스는 한껏 고개를 조아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세상에. 사람을 죽였다니. 그것도 키샤를... 그 엄청난 일을 잊고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기억이 돌아옴과 동시에 심중 깊은 곳에 한껏 눌러두었던 죄책감과 슬픔이 들썩이며 일어났다. 그녀는 눈을 꽉 감고 머리를 양옆으로 세게 서너 번 흔들었다. [키샤는 제 주치의였을 뿐이에요.] 맞다. 주치의였을 뿐이다. 잊어버리자. 다 끝난 일이야.

  ...정말 잊어버릴 수 있을까? 키샤를 잊을 수 있냐고? 할 수 있냐고? 그녀는 입가의 근육에 다짐하듯 힘을 주었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도록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동물이니까. 방어기제란 결국 이럴 때 쓰는 것이지 않겠는가? 지독한 상처를 만들어내는 사건이나,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 앞에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완벽한 거짓말들과 ‘이것이 진실이다.’ 라고 꾸미어내는 배우 뺨치는 연기는 간혹 남을 포함한 스스로까지 감쪽같이 속여 버린다. 모질게 생각을 정리하며 몇 번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잊을 수 있어. 모두 다 아무렇지 않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득 키샤의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아득한 현기증이 느껴져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잊을 수 있다고 다짐을 거듭할수록, 우습게도 점점 더 기억은 선명해지고 그녀가 그리워진다. 

  보석처럼 빛나는 회색 눈동자와 다정하게 웃던 입매의 작은 주름. 건조하지만 희끗해서 더 어린애 같던 피부의 냄새와 함께 그녀의 곁에 떠도는 로션의 따뜻한 향기. 해를 등지고 서면 그녀의 부드러운 윤곽을 가진 갈색 머리카락은 금모래 빛으로 반짝거렸다. 이안스가 꽃에 대해 이야기 하면 키샤는 미소를 띤 얼굴로, 혹은 눈을 크게 뜨고 풍부한 표정을 만들며 흥미롭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다정한 키샤, 외롭고 연약한 이안스를 그저 환자와 의사 관계가 아니라 나이 터울이 큰 막내 동생같이 여기고 언니처럼 보듬어 주었던 그녀...


  겨우 평정을 되찾았던 그녀의 마음과 얼굴 표정이 멋대로 구겨지고 악문 입술 사이로 흐느낌 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가혹한 현실과 진실은 아무리 왜곡하고 외면해도 사라지지도 잊히지도 않는다. ‘이안스 인듀’, 그녀는 사람을 죽였다.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모든 자극에 대해 오감을 단절시키고 고립시킨다 해도, 모든 존재에게 감쪽같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키샤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친구였기 때문에.

  그러나 이안스의 후회가 가득 담긴 머릿속에 이내, 시스의 뺨에 깊이 입을 맞추던 키샤의 가는 어깨가 생각났다. 그러자, 또 다시 올라오는 옅은 분노에 이안스는 하얗게 되도록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키샤에 대한 경계는 그녀가 사랑한다는 존재가 시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시작되었다. 그 문제만 아니라면 한결같이 좋은 친구, 아니 그 이상의 감정으로 그녀를 대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둘의 대화. 분명 키샤는 시스로 하여금 이안스를 제쳐두도록 설득하고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키샤는 이안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시스를 그녀에게서 빼돌리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시스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키샤가 한 짓이라는 유추로 귀결되고, 그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키샤는 더 이상 그녀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이안스와 시스의 사이에 놓인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리고 -심신미약상태였던- 이안스는 그 확신과 동시에 이성을 잃고 배신감과 분노로 그녀를 죽이고 만 것이다. 그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는 정도의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키샤를 해쳤다 하더라도 소중한 존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자를 제쳐버리는 것, 그건 적당한 욕구를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히 발현될 수 있는 행동패턴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녀를 어떻게 죽였더라? ...그런 건 잊었다. 잊어버려야 한다. 아냐, 실은 그녀는 안 죽었는지도 몰라. 키샤를 공격한 이안스에게 화난 시스와 키샤가, 그녀를 이 작은 방안에 가두고 벌을 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안스는 슬픔과 죄책감을 벗어나 보고자, 그녀가 저지른 범죄나 당면한 상황을 정당화하거나 왜곡 해보았다. 하지만 진실에 꼬리를 물고 오는 죄의식은 끝없이 그녀의 팔을 조르는 구속복처럼 온몸이 저리도록 그녀를 억눌렀다. 그녀는 인상을 쓰며 불편한 몸을 꿈틀거렸다.

  길어지는 고뇌에 몸도 마음도 지친 이안스는 고통을 다시 잊어보기 위해서 시스를 열심히 떠올렸다. 자신의 처지를 완전히 기억해 낸 지금도 그녀는 오로지 그가 그리웠다. 시스- 그는 어디에 있을까. 그의 낮고 작은 웃음소리가 떠오른다. 곡선이 아름다운 어깨와 차갑지만 크고 다정한 두 손이 그립다. 감정 없는 얼굴이지만 이안스를 원할 때만은 그의 까만 눈이 욕망으로 빛났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다. 그녀를 원한다고 생각했던 눈빛도, 사실은 프로세서에 입력된 행동약식 프로그램에 의해 도출된 반응일 뿐이다. 그리고 그 무의미한 거짓 현실에 자신을 던져버린 그녀는 이제, 살인자가 된 것이다.


  이안스는 다른 벽면보다 조금 더 반질거리는 정면의 넓은 균열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마도 저건 벽인 척 위장 이미지를 띄워놓은 창일 것이다. 저 너머에서는 안드로이드에 관련한 질투로 사람을 공격한 정신병자를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는 잘난 박사나 의사들이 여러 명 늘어서 있을 터였다.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8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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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무엇이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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