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릅니까? 1-5. 손등을 바라보다

하달리 | 2018.03.22 23:51


무엇이 다릅니까?


Section: 1. 손등을 바라보다 - 05



  그다지 많지 않은 차량들이 간간히 주차공간을 채우고 있는 주차장의 주차위치 표시를 위한 하얀 전등이 바닥에서 가지런히 빛을 내고 있었다. 이안스는 시린 바닥 위를 다리를 끌듯이 휘청거리며 걸었다. -시스는 여기 있어. 지금 막 도착했을 거야. 나는 알 수 있어.- 이안스는 온 힘을 다 끌어내서 그의 신호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H2구역. 그곳이 시스가 있는 곳이야.- 그녀는 벽과 기둥을 더듬거리며 짚어서 몸을 끌었다. 외부와 접촉되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아프다. 몸의 온도가 올랐다 내렸다 흥청망청 거린다. 며칠이나 찬 거실에서 대충 잤으니, 아마 지독한 열 감기일 것이다.

  그때, 갑작스럽고 날카로운 이명이 청각을 자극하는 바람에 이안스는 몸을 멈추고 신음하며 웅크려 앉았다.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통과하는 느낌으로 아득하게 어지러웠다. 어딘가에 도움을 청해야 할까? 무의식적으로 응급구조라인에 연결을 시도했지만 ‘신호없음‘의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아무래도 열이 심해서 전뇌의 무선 통신 패널까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을 것이다. 시스를 찾은 후에 시스에게 병원에 데리고 가달라고 하면 되니까.

  그녀가 한기와 열기가 오락가락하는 몸으로 헐떡거리며 H2구역의 코너를 겨우 돌자, 가장 안쪽에 막 주차를 마친 검은색 레인지로버의 엔진소리가 들려오고 각진 헤드라이트의 하얀 빛이 보였다. 그리고 앞 유리창 너머, 시동을 끄는 시스의 모습이 보였다.


  “시스... 돌아왔구나....시스..”


  당장에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이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눈물을 보이기는 싫었다. 뻐근하게 입술을 깨물고 그에게 몇 걸음 더 다가가며 차량을 자세히 바라보니 차 안에는 시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스의 옆 조수석에 앉은 인물의 모습이 주차장의 새하얀 조명에 드러나 보였다. 옅은 화장을 한 얼굴에 주차장 하얀 빛이 가득 떨어져 아름답고 부드러운 얼굴선이 돋보였다. 키샤 리버스였다.

  그런데 시스의 차에서 뭘 하는 거지? 왜 같이 있는 거지? 이안스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시스와 키샤는 차에서 내릴 생각이 없는지 한동안 차안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처지가 불쾌했지만, 이안스는 어째서인지 두 사람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이윽고 3분의 1쯤 열린 조수석 창문을 넘겨 둘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먼지가 흐르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고요한 공기를 타고 둘의 목소리가 이안스에게도 들려왔다. 키샤는 짜증을 참고 있는 듯한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이 상태로 상황을 방치 할 거야? 언제나 이성적이었던 네가 왜 이러는 건지 도대체 난 이해할 수가 없어!”


  그녀의 목소리가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시스가 말을 받듯이 이어 말했다.


  “이해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너도 이안스를 지켜봐 왔으니까 잘 알잖아! 그냥 감춘다고 될 일이 아니야! 이렇게 시간을 끌어봐야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야. 제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 어떤 게 모두에게 좋은 건지.”

  “...싫습니다.”


  핸들을 꽉 움켜쥔 시스가 단호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키샤는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면서 시스의 것만큼이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하겠어.”

  “안 돼요.”


  그녀는 팔짱을 풀고 그를 향해 몸을 돌리며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왜 안 되는데!!”

  “키샤는 아무렇지 않아요? 어떻게 템페한테 그럴 수 있어요?!”

  “혹시, 이안스 인듀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그래?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잖아!”

  “키샤!!”


  시스가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내내 공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그녀의 목소리가 수그러졌다.


  “이안스를 아끼는 건... 너 만이 아냐. 나한테 이안스가 얼마나 특별한지 너도 알잖아. 이안스, 아니 템페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 더욱 일을 미룰 수 없는 거야!”

  “그렇다면 더 못해요.”

  “너, 템페 사랑하니?”


  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시스가 어깨를 움찔하더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노려보듯 부릅뜬 눈으로 키샤를 바라보았다. 대답 없이 숨만 빠르게 몰아쉬는 시스를 마주보던 키샤는 깊은 한숨을 쉬고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시트에 몸을 깊게 묻으며 말했다.


  “그만둬. 그만 두는 게 좋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냐.”

  “......”

  “이제 선택해야해. 우린 더 이상 감출수도 없고. 더 이상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내버려 둘 수 없어. 이제 네가 결정만 하면...”

  “못해요.”

  “어린 애처럼 이러지마!”

  “난-”


  그녀의 긴 문장마다 짧게 대답하던 시스는 결국 몸을 숙이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안스는 그런 두 사람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기둥에 몸을 기대고 바라보았다.

  이안스가 시스를 알아온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가 저렇게 많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이안스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은 늘 그랬다. 자신과 있을 때보다 키샤와 있을 때, 그는 다양하고 여과 없는 감정을 표현해 보였다. 키샤가 소리 내어 호탕하게 웃으면 그도 얼굴의 미세신경을 움직여서 미소를 지어 보였고 키샤가 저조한 기분으로 가슴 앞에 팔짱을 끼고 방 안을 어슬렁거리면 그는 초조한 표정을 가득 담고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지금도 키샤 앞에 선 시스는 피와 살로 살아 있는 여느 인간처럼 극적인 감정을 똑같이 표현하고 있었다. -너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어?- 이안스는 뜨겁던 온몸의 피가 모두 한 번에 식어버린 것처럼 오한이 느껴져 벽에 기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키샤가 잔뜩 숙인 얼굴을 감춘 손 안에 문지르고 있는 시스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려고 하니 그는 몇 번이나 그녀의 손을 떨어냈다. 그러다 결국 시스가 화난 제스처로 차문을 열며 나가려하자, 키샤는 그쪽으로 몸을 기울여서 그의 양 어깨를 잡아당기더니 억지로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에게 목을 끌어 안기고도 반쯤 문을 연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외면하고 있던 시스는 잠시 후에 결국 얼굴을 돌려 키샤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참 이어지는 둘의 포옹을 멍하게 보고 있던 이안스의 눈앞이, 노이즈가 낀 것처럼 분노로 검게 흐려졌다. 그 자신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안스는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차로 뛰어들었다. 둔하던 몸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는 달려온 그대로 조수석의 유리를 향해 몸을 부딪쳤다.

  그 충돌에 엄청난 타격성과 파열음이 들리고 이안스가 뛰어든 조수석 차창이 터지듯 깨졌다. 조수석에 있던 키샤는 긴 웨이브 머리에 우박처럼 부서지는 유리를 뒤집어쓰며 비명을 지르고 옆자리의 시스는 놀란 얼굴로 깨진 차창 유리 너머로 떠오른 이안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템페..!!”

  “도대체- 이게...!”

  “......”


  시스는 커다랗게 뜬 두 눈에 경악을 가득 담고 이안스를 바라보며 입술을 더듬더듬 떨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잔뜩 움츠리고 있던 키샤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목을 들어 이안스를 확인하고는 놀란 숨을 들이켰다.

  이안스는 이 모든 상황이 끔찍했다. 턱에 조금만 힘을 빼면 가슴속에 가득 차오른 비명이 당장에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안스는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는 자신이 얼굴을 잔뜩 웅크러뜨리고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덜덜 떨리는 뜨거운 손가락 끝에 차갑고 반들거리는 자신의 얼굴 피부가 만져졌다. 그러나 양 볼을 적신 눈물도, 미간을 일그러뜨린 표정의 균열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전신을 가득 채운 이 고통은, 이 고독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이안스를 향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든 키샤는 갈라진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테..템페.. 너, 너 어떻게...”


  얼굴을 만지던 손의 움직임을 우뚝 멈춘 그녀가 키샤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날 ‘템페’라고 부르지 말아요.”

  “....”


  세상에, 이게 자신의 목소리일까? 감정 없고 균일한 톤의 목소리는 소름끼치게 낯설었다.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침을 크게 삼킨 키샤는 어깨를 움츠렸다. 시스가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고 한쪽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앞을 막아서듯 내민 손의 멀거니 벌린 다섯 손가락은 우스꽝스러운 느낌이었다.


  “진정해, 템페.”


  시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안스는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을 것처럼, 유리가 완전히 부서져버린 텅비어버린 조수석 문의 창틀 너머로 양 손을 내밀었다. 이안스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시스의 까만 눈동자는 염려와 공포를 잔뜩 담고 초조하게 번뜩거렸다. 그렇게 이안스를 바라보고 있던 시스의 시선이 키샤의 안부를 확인하려는 듯, 힐끗 그녀 쪽을 향했다. 잔뜩 긴장한 키샤의 가슴 위에 모아진 양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키샤를 바라보는 시스의 시선을 이안스가 알아챈 그 다음 순간.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이안스의 열기가 오른 하얀 두 손이 키샤의 목을 잡아 눌렀다. 그녀에게 급작스럽게 목이 틀어 잡힌 그녀가 끅- 하고 짧은 숨소리를 내고 양 다리를 쭉 뻗으며 버둥거렸다. 이안스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란 시스는 급하게 이안스의 손에 매달리며 큰 소리로 비명 같은 목소리를 냈다.

  마치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안드로이드가 아닌 것처럼, 공포와 경악을 담아서.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8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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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무엇이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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