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릅니까? 1-4. 손등을 바라보다

하달리 | 2018.03.22 22:46


무엇이 다릅니까?


Section: 1. 손등을 바라보다 - 04



  막연하고 쓸쓸한 마음에도 동물처럼 잠은 잘 잤다. 꿈도 없이 눈뜬 다음날, 정오가 다 된 시간이었다. 침대 한가운데 똑바로 누워 있다 눈을 뜬 이안스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방밖으로 나갔다. 기상 직후의 뻐근함이나 무기력함을 느낄 틈도 없이 그녀는 시스를 찾았다.


  “시스, 시스 어디 있어?”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는 그녀 외엔 아무도 없었다. 이안스는 시스가 외출을 했다면 메시지가 남겨져 있을 주방의 냉장고로 갔다. 하지만 까만 LED화면 위에는 냉장고의 현재 온도를 알려주는 순자만 멍하니 떠 있었다. 금세 들어오려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실로 갔다. 아무도 없는 거실의 한중간엔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커다란 소파베드가 덩그러니 정오의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누워있었다.

  이안스는 시스가 누워 있던 모습을 따라서 널찍한 가구에 몸을 눕혔다, 높은 천장이 한가득 시각 안에 들어온다. 이안스는 시스가 이 의자에 대기모드로 누워 있을 때마다 멍한 눈으로 보고 있을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얀 천장을 드문드문 장식하고 있는 푸른색의 가는 곡선과 연보라의 큰 얼룩이 교차하며 돌아가는 기하학적인 무늬는, 이안스의 눈에는 마치 담에 바싹 붙어 기어오르는 넝쿨식물 같아 보였다. 보라색 꽃이 피는 한해살이풀. 2미터밖에 안 되는 키에, 하얀 뒷면의 잎과 나비 날개 같은 뽀얗고 발그레한 꽃잎을 가진, 덩굴손으로 근처의 것을 감고 올라가는 연약한 식물. 그녀는 위태롭게 팔락이는 작은 꽃잎과 꽃봉오리의 도톰한 선을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복잡한 회로가 뒤엉킨 시스의 차가운 인공 뇌는 저 모양을 어떻게 바라볼까?



***



  “식물...에 대해서 잘 아나요?”


  지젤이 물었다. 연약한 가지를 바람에 흔들고 있는 스위트피를 생각하며 행복했던 기분은, 맞은편에 앉은 지젤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온통 하얗고 서늘한 사방의 벽을 다시 인식하며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눈을 든 이안스는 머뭇거리며 답했다.


  “....식물학 박사 과정 중이었어요. 바로 몸이 안 좋아져서 제대로 진행하지도 못했어요, 결국 칩거에 들어갔고...”


  지젤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타블렛 컴퓨터의 화면을 여기저기 만져서 파일을 실행하고 나서 이안스에게 물었다.


  “어린 시절의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요?”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죠.”

  “음,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당연하죠.”


  지젤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 위를 체크했다. 그의 손길을 따라 빗-빗- 가벼운 진동음이 들리고 그가 이어서 물었다.


  “고등학교 졸업은 어디서 했습니까?”

  “M시...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과정을 마쳤습니다.”

  “흐음. 자신이 도덕적이라 생각하나요?”

  “어느 정도는요.”


  지젤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 


  “지금 사는 곳은 어디죠?”

  “U시에 있는 N빌딩 11층이요.”

  “절대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을 한 적이 있나요?”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죠? 정신감정을 새삼스럽게 다시하고 싶어요?”


  신경질적인 이안스의 목소리에 열심히 화면을 터치하던 손을 멈춘 지젤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끄러진 안경을 밀어 올리며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가 어디인것 같습니까?”

  “병원이겠죠.”

  “완전히 틀린 표현은 아니죠.”  

  “...?”

  “여기는... 몸이나 정신을 치료하는 병원 같은 건 아니지만, 확실히 당신 같은 케이스를 관리하고는 있습니다.”

  “나 같은 케이스?”

  “당신같이-”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몸을 뒤로 기댔다. 그의 손에 느슨하게 들려있던 타블렛 컴퓨터가 철제의 테이블위에 딱-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놓여졌다.


  “‘대인사고’를 낸 케이스를 말이죠.”


  그가 꺼낸 단어에 이안스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자, 지젤은 몸을 앞으로 기대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억에 있습니까? ‘그 일’이 있던 날이?”

  “그...일?”


  이안스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녀의 머릿속은 노이즈가 가득한 오래된 아날로그 텔레비전처럼 알 수 없는 잡음만 내고 있었다. 확실하게 인식되는 것은 -더 이상 시스와 함께 있을 수 없다.- 뿐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도, 과정도 모두 잊고 있었다. 이안스가 입을 멍청하게 벌리고 눈을 크게 뜬 채 말이 없는 것을 보며 지젤이 빠르게 말했다.


  “그래요, 그 일 말입니다. 당신이 여기 오게 된 사고건. 그 사건이 발생한지 거의 3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회사 측에서 이 시설에 당신의 관리를 맡겼죠. 우리는 여러 가지로 곤란했어요. 당신의 협조가 있어야 사건이 근본적으로 마무리 되는 건데 말이죠. 드디어 기억할 상태가 된 것 같으니 조금 더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군요. 언제 당신의 상태가 달라질지 모르니 오늘 무리해서라도 면담을 진행해 보도록 하죠. 이해해주시겠죠?”


  내내 짧게만 말하던 그가 그녀가 어떤 대답도 할 새 없이 물을 쏟아내듯 말을 우수수 뱉어냈다.


  “오늘 제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당신이 날 알아보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어요. 그동안 어떤 자극에도 전혀 리액션이 없었거든요. 그 동안 당신은 외부 자극에 대해서 완전히 자신을 단절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어요. 물리적인 네크워크로도 전혀 정보를 이동할 수가 없더군요. 우리는 그저 당신이 우리에게 반응하기를 무기한 기다리고 있는 수밖엔 없었죠. 하지만 오늘은 질문에 대한 반응이나 모든 게 적극적인 듯 보입니다. 다행이에요. 자-”


   지젤은 재빠르게 타블렛 컴퓨터를 들어 올려서 이안스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이 사람. 기억납니까? 그러니까 그 사건이 일어났던 날, 파손된 차량 조수석에 있던 인물입니다.”


  그가 자랑스러운 상장처럼 가슴 앞에 든 타블렛의 화면을 크게 채우고 있는 사진은 회사 출입증에 들어갈 용도로 찍은 듯 보이는 정갈한 느낌이었다. 사진속의 인물은 웨이브 진 장발에 연보라색의 쉐도우와 조금 무거워 보이는 붉은 빛의 립스틱을 곱게 칠하고 정면을 향해 낯익은 미소와 다정한 눈매로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하얗게 드러난 목에는 얇은 사슬의 은 목걸이가, 그리고 사진의 아래에는 [피해자 : ‘네오호모사피엔스 Inc’ 메인 엔지니어 키샤 리버스] 라는 짧은 텍스트가 덧붙여져 있었다. 여전히 입을 멍하니 벌리고 눈의 깜빡임도 없이 화면을 보고 있던 이안스가 중얼거렸다.


  “......키..샤?”

  “그래요. ‘키샤 리버스’. 이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기억납니까? 사건이 났던 날이?”


  맑게 웃는 키샤의 사진을 보고 있던 이안스의 시선이 혼란스럽게 공중에서 움직였다. 그녀의 기억에 연관된 뉴런의 상호소통이 활발하게 회전하며 감각영역 깊숙한 곳을 더듬어서 외면하고 숨겨둔 기억의 조각을 맞추어서 긁어내 읽었다.



***



  그날 이후, 아니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날 부터인가 시스를 볼 수 없었다.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이 며칠째 인지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눈을 뜰 때마다 그를 확인하러 매일 작업실과 거실을 드나들어도 그는커녕 그가 집안에 있었던 흔적조차 없었다. 간혹 시스를 기다리며 거실의 소파 베드에서 잠들곤 했지만 잠든 사이 시스가 다녀간 건지, 아니면 진찰 때문에 키샤가 다녀가는 건지, 눈을 뜨면 늘 그녀는 자신의 방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면 이안스는 혹시나 싶어 바로 시스가 있을 작업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역시 그는 없었다.

  통신전용 네크워트에 접속해 그를 불러도, 시스는 이안스에게 응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지속적으로 오프라인 상태로 표시되었다. 키샤에게 라도 묻고 싶었지만, 돌연히 키샤도 더이상 그녀를 진찰하러 오지 않았다. 시스의 행적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기 위해 그녀에게 통화를 시도해도, 그녀의 통신라인 역시 컨벤션 참여를 위해 급하게 출국한다는 부재중 메세지만 재생되었다. 도무지 그가 어디 있는지, 왜 사라졌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안스는 시스의 모델명이나 제작회사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께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부모님은 안드로이드가 행동지침에 오류를 일으켜 관리 반경을 벗어났다면 보상을 받고 그동안 백업된 업무 데이터가 다운로드 된 다른 기체를 사용하면 될 거라고 말하실 게 뻔했다.

  그녀는 시스를 만나야 했다. 그를 봐야 했고 대화를 나눠야했다. 왜 갑자기 그녀의 앞에서 사라져 버렸는지 이유를 들어야 했다. 비록 연약한 몸이더라도, 시스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그가 있는 곳이 어디든 그 자리에서 바로 뛰쳐나갈 거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가는 방법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그에게 갈 거라고, 그를 찾아낼 거라고 다짐했다.

  이안스는 시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그의 물리적인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서 네트워크를 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안드로이드의 정보에 대해서만 검색했지만 정보를 찾는 행위는 점차 심화되어서 공공기관의 방화벽을 멋대로 뚫고 암호화 되어 있는 개인의 정보까지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스가 제작되었을 법한 안드로이드 제작회사와 안드로이드 등록사업소, 정비회사와 소프트, 하드웨어 회사의 관리프로그램과 기업의 인트라넷에 침투하는 것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그를 찾는 일에 집중해도 자신의 ‘안드로이드 연인‘ 시스의 위치는커녕 그의 기본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이안스는 전뇌화 된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연결되어 있는 통합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던 평범한 사용자에 불과했었지만, 그렇게 시스를 찾아 네트워크 속을 헤매이는 와중에, 각종 기관에서 만들어놓은 방화벽에 돌파구를 만들고 침입자에 대한 백신프로그램을 모두 무력화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다양하고 깊은 정보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감에도 시스의 그림자는 전혀 잡히지 않았고, 그 사실은 그녀를 더욱 외롭고도 절박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모든 생활도 등 뒤로 미루고 온통 시스를 찾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건강은 더욱 악화될 터였다. 이제 그만 그를 포기하고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야 했지만, 이안스는 그를 찾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부재가 길어지면 모든 게 흐려질 만도 한데,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그가 그리웠다.

  차가운 어깨. 낮은 목소리.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깜빡임 없는 검은 눈동자.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선명한 화면 위 영상처럼 그의 모습이 늘 눈앞에 떠돌았다. 아무리 근사하고 다정한들, 누군가가 기획한 성격 프로그램이 설치된 안드로이드 일뿐인데 이렇게까지 그를 원하는 이유를 그녀도 알수 없었다. 작정한다면 얼마든지 더 멋진 안드로이드들로 대체 할 수도 있을 테지만, 혹여 그의 외형적 조건이 그녀를 사로잡았다면 그를 쏙 빼닮은 기체를 찾아낼 수도 있을 테지만, 이안스는 ‘그’를, ‘시스’를 원했다.



  “시스, 보고 싶어.”


  그날 밤도 시스의 소파베드 위에 누워 이안스는 그를 불렀다. 소리 내어 부르는 동안에도 그녀는 네트워크를 안을 헤엄치며 빛의 속도로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접속시간만 8시간째, 여전히 그에게로 이어질 정보는 없었다. 그녀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며 길게 한숨을 쉬고 손목과 목 뒤에 플러그 인 했던 케이블을 뺐다. 대용량 데이터 케이블까지 물리적으로 연결하며 다양한 경로로 그를 찾았지만 시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깨어 있는 내내 시스를 찾다 지쳐 잠을 청하면서도 가슴을 채우는 저릿한 상실감에, 잠이 들기 전까지 눈물도 나오지 않는 눈을 잔뜩 찡그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신음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언제나처럼 소파베드에 누워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이안스는 시스의 작업실 한중간에 서있었다. 그가 사라진 후, 한동안 쓰지 않은 책상은 균일하고 뽀얀 먼지가 빽빽이 쌓여 있었다. 이안스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눈꺼풀에 힘을 주고 몇 번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오랜 시간동안 과하게 네트워크에 접속했던 게 과로가 된 걸까, 취한 것처럼 머릿속이 몽롱했다. 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감기인가. 확실히 얼굴의 열이 높은 것 같다. 몸의 열기 때문에 설피 깬 상태로 작업실까지 걸어 온 건지도 모른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갈라지는 목에 겨우 침을 모아 삼키고 시스를 불렀다. 하지만 오늘도 작은 스탠드만 몇 군데 켜져 있는 집안은 조용했다.


  그런데 왜 눈을 떴을까? 왜 작업실 중간에 서 있지? 의아하게 생각하며 버릇처럼 네트워크에 접속하자, 작은 신호가 그녀의 척추 신경을 모두 훑고 머릿속에 경고음처럼 날카롭게 울렸다.

  그것은 ‘시스’였다!! 그 특유의 시그널이 건물로 다가오고 있는 게 뚜렷하게 느껴졌다. 돌아오고 있다! 시스가 돌아오고 있다! 그녀는 나무토막 같이 뻣뻣한 팔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여서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안스는 달달 떨리는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벽에 기대어 섰다. 얼마만의 외출이지? 밖의 공기의 낯선 차가움에 코끝이 찡하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며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끌듯이 몸을 엘리베이터에 넣은 그녀가 버튼 위를 더듬거리다가 어질거리는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건물정보를 겨우 기억해내고는 맨 아래의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손가락의 압력을 감지한 ‘B5’라는 버튼에 하늘색 불이 들어오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몇 초가 흘렀을까. 잠시 후, 이안스는 자신도 모르게 감긴 눈을 떠보니 멍하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고 있던 몸에 힘을 주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팔을 움직였다. 그러자 눈앞의 바닥이 울렁거리고 등 뒤로 통증이 느껴진다. 이안스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양팔로 덜덜 떨리는 어깨를 감싸쥐고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거친 기운에 발을 내려다보니, 신발은커녕 실내화나 양말도 신지 않았다.


  “...시스.”


  그녀는 뻑뻑한 목청에 힘을 주고 어두운 주차장에서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8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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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무엇이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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