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딸기

하달리 | 2018.02.27 23:50


사랑에 빠진 딸기






  나는 딸기농장의 아들입니다. 나는요, 딸기를 어엄-처엉- 좋아하죠! 사실, 아버지가 총각 때, 잘 관리 하시던 배 밭을 처분하시고 딸기로 주 종목을 변경하신 건, 순전히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딸기광이었거든요. 통통한 볼에 주근깨가 귀엽던 어머니의, [딸기를 가꾸는 남자가 좋아요.] 라는 말 한마디에 아버지는 당장 딸기농장을 알아보고 다니셨던 겁니다.

  어쨌든. 뱃속부터 딸기를 먹고 자란 나는 세상에 나와서도 여전히 딸기가 좋습니다.


  “야, 이 자식아! 수확을 해야지 니 배에 쳐 넣으면 어뜩하냐!”


  가득 담긴 딸기를 나르며 몇 줌 주워 입으로 쑤셔 넣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치셨습니다.


  “아부지도 차암, 제가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세요. 거 한 두알 먹는 거 가지고...”

  “니 손에 들린 게 그게 한 두 알이냐? 한 바구니지?”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딸기를 얼른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면서 수확물이 가득담긴 외바퀴 수레를 밀며 하우스를 나갔습니다.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먹은 딸기도 올라오겠어요. 얼른 내 아군인 엄마 있는 곳으로 가야지.


  “엄마 가져왔어.”

  “응, 이쪽 최씨 아저씨한테 내려 드려라.”


  내가 아저씨한테 수레를 넘기기 바쁘게 내 손에 묻은 끈적끈적한 진액을 옷에 문지르는 것을 알아본 엄마는 보일 듯 말듯 웃었습니다.


  “너 또 딸기 먹고 아빠한테 혼났지?”

  “어? 이히히...”

  “너는 얘가, 그렇게 딸기가 좋니?”

  “응. 난 이 세상에서 딸기가 제일 좋아.”

  “으이구, 나이가 열여덟이나 되어 가지고 애같이...”


  딸기물이 묻은 입언저리를 슬쩍 손으로 훔쳐 주고 딸기처럼 주근깨가 가득한 엄마의 세모난 얼굴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습니다. “가서 얼굴 좀 닦고 와, 살 트겠다.” 엄마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 수돗가로 달려가 물을 틉니다. 대충 입가와 손을 닦는 내게 쏟아지는 물소리 사이로 자그만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줌마-”

  “어머, 경진이 왔니?”

  “저희 엄마가 가져오라는 거 가지러 왔는데요...”

  “그래. 전화 하셨다. 여기 실어 놨다. 이거 수레 째 가져가면 돼.”

  “네. 고맙습니다.”


  셔츠를 끌어다 얼굴에 젖은 물에 닦고 돌아보니 나보다 머리 하나 작은 경진이 녀석이 보입니다. 저 선머슴 같이 생긴 애는 두 골목 아래 사는, 시내의 반찬가게 집 막내딸이죠. 언덕을 뛰어 올라왔는지 여태껏 숨을 몰아쉬며 꼭 사탕두개를 문 거 같이 통통한 볼에 딸기처럼 붉게 홍조를 띤 것이 보입니다. 교내 여자축구부에서 좀 날리는 모양인데, 지난번에 몇 번 오빠 같은 나한테 까불 길래 나의 환상의 드리블로 기를 죽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뒤로도 만날 때마다 끝없이 깐죽거리는 맹랑한 녀석이랄까요.


  “....”  


  모른척하기는 좀 그래서 나는 손목을 슬쩍 움직여서 인사를 했는데, 저게 바로 앞에 서있는 나를 싹 무시하고 우리 엄마를 향해서 방글방글 웃으면서  “그럼 가 볼게요!” 하고 씩씩한 목소리와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서는, 우리 아버지가 경진이네서 빌렸던 큼지막한 양수기와 엄마가 고맙다며 얹어준 딸기 한 바구니가 올려진 L수레를 낑낑거리면서 밀기 시작합니다.

  어이구. 약한 척 하기는, 전에 내 정강이에 태클 거는 거 보니까 투지만큼이나 체력도 엄청나드만, 어른들 앞이라고 괜히 예쁜 척 하는 모습이 같잖아서 팔짱을 끼고 쯧쯧 혀를 차고 있자니, 엄마가 도와주라는 듯이 제 옆구리를 쿡 찌릅니다. 뭐, 나는 워낙 착한 엄마 아들이니까 어쩔 수 없이 경진이의 수레에 다가갔습니다.


  “도와줄게.”

  “됐거든?”

  “아, 도와준다고.”

  “....”


  경진이는 투덜거리며 두어 번 손을 털어내더니 내가 수레를 밀수 있게 조금 옆으로 손을 옮깁니다. 힘들긴 힘들었나봅니다. 나는 끙차- 하고 수레를 밀어 봅니다. 뭐, 생각보다 무겁지도 않구만.


  “집으로 가져갈 거야?”

  “아니, 저 언덕 위쪽에 밭 옆에 있는 창고로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어.”


  으윽. 45도의 경사를 자랑하는 언덕을 턱으로 힐끗 가리키는 것을 보니 한숨이 나옵니다. 괜히 도와준다고 했나. 뭐. 그래도 도와주기 시작한 거 까짓 거 합니다! 나는 수레를 미는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빨리 해버리고 집에 가서 딸기 먹어야지. 나는 가파른 언덕을 수레를 밀며 꽤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으자자자자자자-”

  “야! 천천히 가! 수레 다 망가져!”


  경진이 녀석이 자기 체력이 저질인건 인정하기 싫어서 괜히 멀쩡한 수레 핑계를 댑니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열심히 수레를 밉니다. 경진이가 매달리다시피 하며 수레에 끌려 언덕으로 올라옵니다. 덜컹거리는 느슨한 바퀴소리와 경진이의 헉헉거리는 밭은 숨소리, 한참 하우스에서 일해서 젖은 나의 몸에서 올라오는 땀 냄새와 흔들리는 바구니 안에서 나는 딸기 냄새가 알싸하게 섞여서 묘하게 기분이 좋습니다. 나는 괜히 들떠서 더 열심히 올라갔고 어느덧 다 오른 정상에서 “으쌰!” 하고 큰소리를 내며 수레를 멈췄습니다.


  “하. 곰 같은 놈, 힘도 더럽게 세네.”

  “하아-하아.”


  나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웃으면서 경진이를 내려다봤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얹고 아랫입술을 내밀며 -어떠냐. 나 쎄지? 그래도 자꾸 나한테 까불래?- 라는 표정 정도는 지어 주었죠.

  송골송골한 땀을 닦으며 나를 보는 경진이의 볼이 아까보다 더 빨갛습니다. 축구부가 뭐 이렇게 약한 거야? 몇 번, 아니 실은 자주 경진이가 축구 하는걸 본적 있는데. -아, 제가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요- 그라운드에서 공을 잡으면 여기저기 잘만 뛰어다니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빨개져서 쩔쩔 매나 모르겠네요.


  나는 천천히 수레를 밀면서 저만치 보이는 경진이네 창고로 갔습니다. 등 뒤로 경진이가 자박거리며 자갈을 밟고 따라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둑해지는 노을과 빨갛게 산사이로 사라지는 묽은 해의 끝자락이 짓이겨진 딸기와 딸기 즙에 물드는 엄마 앞치마자락 같아서 괜히 기분 좋아 흥흥-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흠흠- 딸기~ 딸기가 좋아~ 딸기가 맛있어~ 조아조아조아조아조아 흠흠흠-”


  제가 타고난 박치 음치에 이 두툼한 음색이 영 별로인건 압니다만, 좋아하는 유일한 딸기 노래니까 신나게 흥얼거려봅니다.


  “너... ... 있어?”

  “응? 뭐?”


  내내 조용하던 경진이가 뭐라고 웅얼거렸는데, 자갈에 바퀴가 밀리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옹알거리는 소리가 잘 안 들려 나는 돌아보며 되물었습니다. 내 목소리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건들거리며 따라오던 경진이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듭니다.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응? 갑자기 그건 왜?”

  “...그냥. 너는 맨날 딸기 타령만 하니까.”


  그녀는 몇 걸음 빨리 걸어서 내가 끄는 수레 옆으로 다가오면서 말합니다. 그나저나 정신차려보니 수레를 내가 끌고 있네요. 뭐. 우리 집에서 빌린 거 돌려주는 거니까. 이정도야.


  “음... 지금 좋아 하는 사람은 없고. 이상형은 있지.”

  “이상형은 무슨...”


  그 애가 코웃음을 치면서 바구니에 놓인 딸기 하나를 집어 앙 물어 먹습니다. 코끝에 퍼지는 딸기 냄새가 좋습니다. 저도 모르게 손이 가서 얼른 집어 입안에 넣었습니다. 무관심한 척 하던 경진이가 궁금했는지 묻습니다.


  “뭔데? 이상형이.”

  “딸기 좋아 하는 사람.”

  “아이고, 그놈의 딸기타령...”

  “음... 그리고...”


  난 입안의 딸기를 우물거리며 앞치마에 딸기 얼룩을 잔뜩 묻힌 엄마 품에 안겼을 때 느꼈던 포근한 온기와 그 품에서 나는 달콤한 향을 떠올렸습니다.


  “딸기냄새 나는 사람.”

  “....이 딸기바보야. 그냥 딸기랑 처살아라...”

  “헤헤헤-”


  투덜거리든 말든 내가 낄낄거리는 사이 어느새 경진이네 창고 앞입니다. 나는 경진이와 함께 수레를 꽤 턱이 높은 창고 안으로 낑낑거리며 밀어 넣었습니다. 창고 안쪽에 수레를 세운 우리는 손바닥을 탁탁 털었습니다. 


  “끝났다. 그럼 가볼게.”

  “...고마워.”


  웬일로 이 깐죽거리는 무뚝뚝한 애가 고맙다는 말을 다 하네요.


  “고맙긴 뭘.”

  “,....”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이고 나가려는데, 경진이가 돌아서는 내 팔을 얼른 잡습니다.


  “응?”

  “딸기 먹고 가. 수레 가져 오느라고 힘들었잖아.”

  “어? 정말?”



  우리는 바구니를 들고 창고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우리는 둘 사이에 놓여 있는 바구니 속에 든 딸기를 연신 주워 먹으면서 길게 노을 지는 하늘을 구경했습니다. 열심히 쩝쩝거리면서 딸기를 먹는 나를 보면서 경진이 말합니다.


  “내 생각에 넌 바보가 아닌가 싶다.”

  “뭐? 너 죽을래?”


  내가 제법 무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쳐다봤지만 경진이가 우습다는 듯이 입을 올려 웃고 딸기를 집어서 내 입에 꾹 찔러 넣어 줬습니다. 나는 그걸 얼른 받아먹습니다.


  “야. 곰탱아.”

  “너 진짜 죽는다.”


  또 딸기를 넣어 줍니다. 나는 얼른 또 받아먹지요.


  “이 미련한 곰 새끼야.”

  “읍, 야. 너 진짜 한 대 맞고 싶어?”


  그리고 또 딸기 하나. 그리고 나는 입을 벌려서 냠.


  “이거 봐.”

  “머가웅?”


  내가 입에 가득 찬 딸기를 우물거리면서 대답하자, 그 애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크게 웃어버렸습니다. 


  “하하하하- 너는 요 딸기면 다 되지?”

  “....”


  나는 입가에 묻은 딸기 물을 손등으로 쓱 훔쳐 내면서 우물거렸습니다. 지금 대답을 못 하는 건 입안에 딸기가 가득차서입니다!! 절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래... 네가 그렇지... 단순한 놈.”

  “아. 아니다 뭐, 우움-”


  서둘러 대답하는 바람에 입안의 딸기 조각이 경진이 뽀얀 볼에 한 조각, 가서 튀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경진이가 정면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여전히 쯧쯧 거리면서 고개를 흔듭니다.


  “아니야, 내가 볼 때는 너는 바보가 맞아. 머릿속에 딸기욕구. 요거 하나만 들어 있는 거지. 뭐 다른 욕구는 아예 없는 거야.”

  “....야. 아, 아니야, 그런 거.”

  “뭐, 수면욕. 출세욕. 물욕. 뭐 이런 거 전혀 없이. 딸. 기. 이렇게 있는 기지.”


  경진이가 딸. 기. 라고 입을 크게 벌려 말하면서 내 이마를 꼭꼭 찌릅니다.


  “아, 씨 아니라니까!”

  “그럼 이 곰탱이 머릿속에도 딴 게 있단 말야?”

  “그럼! 나도 사람인데!”


  나는 여전히 바구니의 딸기를 집어서 입안에 넣으며 말합니다. “고만 좀 처먹어!” 경진이가 내 손을 찰싹 때렸습니다. 치- 언제는 먹으라더니....


  “그럼, 너도 출세욕 이런 게 있어?”

  “그럼! 난 엄청 큰 딸기농장 주인이 될 꺼야.”

  “....그럼 그렇지... 그럼 수면욕은 있냐?”

  “당연하지. 꿈을 꿔야 딸기를 먹는 꿈을 꾸는 거 아냐?”

  “너 그 정도면 병 아니냐?”


  처음엔 농담처럼 묻던 경진이가 제법 심각하게 내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나도 처음엔 농담처럼 대답했는데. 약간 진심이 담겨있기도 해서 슬슬 스스로가 걱정됩니다. 


  “너... 혹시,,,”

  “왜...왜?”


  경진이가 얼굴을 바싹 나에게 들이대서 나는 조금 뒤로 물러섰습니다. 얼굴에 묻은 딸기 조각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서 저절로 코가 벌름 거립니다. 얼굴을 바싹 붙여 나를 뚫어져라 올려다보는 경진이가 의심이 잔뜩 묻은 얼굴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진짜 딸기를 사랑해서 딸기랑 결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딸기한테 욕망 같은 걸 느낀다던가...”

  “야!!!”


  내가 딸기보다도 더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를 꽥 지르자 그 애가 배를 잡고 뒤를 몸을 젖히면서 깔깔대고 웃습니다.


  “푸하하하~ 곰탱이 얼굴 봐라~! 너 진짜 그런 거 아냐?”

  “너 진짜 즙이 나오도록 맞아 볼래!”


  내 당황한 반응이 웃겼는지 그녀가 아주 신이 나게 웃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 아이고오- 니 얼굴 진짜 웃겨! 내가 폰을 안 가져온 게 한이다~ 사진을 찍어놔야 하는 건데~!”


  그 애는 내가 씩씩 거리든 말든 한참 깔깔거리더니 겨우 웃음을 그치고 몸을 세웁니다. 그리고 자기 허벅지위에서 바구니를 올려놓고 딸기를 먹기 시작합니다. 뽀얀 볼이 불룩하고 올라오고 조그만 입술이 오물거립니다. 경진이는 눈가에 마른 눈물이라도 맺힌 건지, 손끝으로 훔치는 시늉을 하며 여전히 키득거립니다.


  “하긴, 딸기라면 죽고 못 사니까.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우흐흐흣...”


  키득거리는 게 얄미워서 얼른 손에 잡은 바구니를 낚아챘습니다.


  “야, 너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우리 딸기 내놔!”

  “뭐냐! 유치하게!”


  그녀가 지지 않고 입에 얼른 딸기를 쑤셔 넣으며 바구니를 품에 콱 끌어안습니다. 나는 더 세게 바구니를 끌어 당겼습니다.


  “내놔! 이 자식아!”

  “싫어! 내거거든!”

  “내놔!-”


  바구니를 확 당기는 나에게서 힘껏 몸을 당긴 경진이 때문에 균형을 잃은 우리는 바구니를 끌어안으면서 엎어졌습니다. 둘 사이에 바구니에서 쏟아진 딸기들이 짓눌리고 날아간 바구니가 저만치에서 뒹굽니다. 그리고-

  입과 혀에 닿는 달콤하고 몰캉몰캉한 감촉에 나는 꽉 감고 있던 눈을 떴습니다. 어- 눈앞이 까맣고 하얗고 뿌연 것이 제대로 안보여요. 정신을 차려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까, 바로 앞에 눈을 동그랗게 뜬 경진이가 보입니다. 


  “.......”

  “......”


  그리곤 땅에 등을 대고 벌렁 드러누운 경진이 몸 위로 양팔로 땅을 짚고 그녀를 깔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바구니에서 굴러 내린 딸기들이 엉망으로 이겨져 있고 마침 먹으려고 딸기를 물고 있던 경진이는 내 입에 힘껏 눌려 웃긴 모양이 된 딸기를 즙이 축축하게 젖은 입술에 반쯤 문채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한참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굳어가지고 서로를 보았습니다. 눈만 깜빡이던 경진이가 입안의 딸기를 우물거리더니 꿀꺽 먹어버리는 게 보입니다. 그러더니 말했습니다.


  “...뭐하냐? 안 비키고.”

  “어? 어..”


  경진이 하얀 얼굴을 너무 가까이서 보고 있자니 괜히 땅을 짚은 손이 부들거리는 거 같습니다. 나는 얼른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습니다. 바닥에 누워있던 경진이 윗몸을 일으켜서 잡아 달라는 듯이 나에게 손을 턱 내밉니다. 나는 서둘러 경진이 손을 잡아서 일으켜줬습니다.


  “......”

  “......”


  우리는 딸기로 범벅이 된 서로를 내려다보면서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벌건 셔츠 끝을 잡아 늘이고 있는 나를 보던 경진이 고개를 돌려 까무룩 해진 하늘을 보며 말했습니다. 


  “얼른 내려가자. 어두워졌다.”

  “응? 아, 그래 가자.”


  나는 앞서서 걷는 경진이 뒤를 따라서 걸어 내려갔습니다. 솔솔 불기 시작하는 밤바람이 앞서가는 경진이한테서 묻은 딸기 냄새를 뒤에 오는 나에게 뿌려줍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킁킁 냄새를 맡으면서 강아지가 따라가듯 종종 걸음으로 경진이를 따라갑니다. 


  저만치, 경진이네 집과 저희 집으로 가는 길이 나누어지는 갈림길이 보입니다. 가는 내내 아무 말 없이 가던 경진이가 돌아보지 않고 말을 꺼냅니다.


  “그러고 보니 바구니를 안 챙겼네.”

  “괘, 괜찮아.”

  창피하게, 괜히 말을 더듬어버렸습니다.


  “그래.. 나중에 내가 가지고 너희 집에 갈게.”


  경진이가 웅얼거리는 목소리의 끝이 뭉개지는가 싶더니, 볼이 살짝 보일정도만 고개를 조금 돌리고 말합니다.


  “아, 근데 너 아까 이상형이 뭐라고 했지?”


  경진이 뒷모습만 보며 따라가던 내가 퍼뜩 대답합니다.


  “응? 나? 딸기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또 뭐라고 했더라?”


  여전히 완전히 돌아보지 않고 슬쩍 고개만 돌린 동그란 볼 선에는 여전히 아까 묻었던 딸기물이 홍조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닦아 주기 싫어요. 그럼 딸기 냄새가 안 날거 같아서. 나는 조금 어벙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딸기 냄새 나는 사람...”

  “그래? 음...”


  흠, 하고 길게 숨을 쉬더니 그녀가 갈림길로 들어서면서 손을 들어 보입니다.


  “나 갈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어, 그래.”


  나도 얼른 손을 들어 보였습니다. 뭐 뒤돌아선 그녀에겐 안보이겠지만. 난 그녀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바람에 살랑살랑 밀려오는 딸기 냄새가 기분 좋아서 괜히 몇 걸음 더 따라가 봅니다. 

  10걸음정도 떨어졌을까, 경진이가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종종 따라가며 경진이의 들썩이는 걸음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뒤돌아선 얼굴과 마주쳐 깜짝 놀랐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어? 왜?”

  “나도 좋아해.”

  “응?”

  “나도 딸기 좋아한다구.”

  “....”


  그러곤 그녀는 몸을 돌려 얼른 길 아래 자기 집으로 뛰어 내려가 버립니다. 나는 괜히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며 경진이 몸에 묻은 딸기 냄새가 안 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어 봅니다.


  경진이는 저만치 어둠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자기 집에 도착했을 테지만, 저한테는 아직도 경진이 옷에 짓이겨진, 내 입술에 눌린 채로 경진이 입에 물려 있던 그 딸기 냄새가 납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계속.




- 사랑에 빠진 딸기, END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7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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