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Please.

하달리 | 2018.02.21 00:15


Please, Please.




  C는 잠이 아직 덜 몰려나간 얼굴로 세면대 앞에 서서 길게 하품을 했다. 목을 돌려 뚜둑, 하고 소리를 내자 조금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양치컵에 썰렁하니 꽂아진 칫솔을 집어 들고 구겨진 치약튜브를 꾹 눌러 짜서 치약을 발라 이에 가져갔다.
  입 안 가득. 그리고 비공을 타고 싸한 박하향이 올라온다. 텁텁한 입안을 개운하게 헹궈주는 역겨운, 혹은 상쾌한 치약 맛이 혀를 달군다. C는 혀가 화끈거려 얼른 입안의 거품을 뱉고 연신 물을 헹구어 냈다. 그리고는 혀를 길게 빼고 거울 너머의 젖은 입을 들여다본다.

 

 

***

 

 

  어제 저녁,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으니까, 밤이란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동창생이자,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N이 불러서 나가 보았더니 그는 동네 놀이터 옆의 공터의 등받이 없는 납작한 벤치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소주병을 비우고 있었다. 얼마나 마셔댔는지, C가 싫어하는 술 냄새가 가득한 숨을 몰아쉬는 N은 이미 술에 잔뜩 취해서 얼굴부터 귀까지 온통 빨갰다.


  자신도 술이라면 진탕 마셔대는 주제에 타인의 술 냄새라면 질색하는 C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술 냄새를 뿌려대는 N의 옆자리에 주저앉았다. 말없이 흙바닥의 돌을 발끝으로 차고 있던 C는, 흐리멍덩한 표정을 한 그의 옆얼굴을 힐끗 거리다가 N이 연신 들이 내쉬는 한숨의 고루함을 참지 못하고 그의 맞은편으로 옮겨 앉으며 괜히 호들갑스럽게 코를 쥐고 말문을 열었다.


  “아, 술 냄새. 너 얼마나 마신거야?”
  “ ...넌, 되게 웃긴 거 아냐?”
  “내가 뭘?”
  “지도 허구헛날 술 퍼마시면서 다른 사람 술 냄새라면 질색하고.”
  “......”
  “줄담배 처 피면서 남의 담배 냄새라고하면 질색하고, 넌 성격 더러워.”
  “흥-”


  C는 시시한 코웃음을 치고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봐라, 봐라. 또 담배 처피는 거. N은 휘청거리는 손으로 C가 막 입에 문 담배를 뺏어 들어 자기가 입에 물었다. 다시 뺏으려는 그의 손을 걷어내고 N은 입으로 담배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뭐 하냐, 불 붙여봐.”


  C가 구시렁거리며 불을 붙이고, N은 담배를 위태롭게 손가락사이에 끼어들고 길게 연기를 뱉었다. 그리고 말했다.


  “야.”
  “왜.”
  “야아-”
  “왜 미친 새끼야.”
  “......”


  연신 그를 부르던 N은 한동안 말없이 담배 연기만 길게 뱉고 마시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더니 의자에서 미끄러지며 흙과 낙엽으로 엉망인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가을이라 제법 바닥이 싸늘할 텐데 춥지도 않나. 하지만 그를 일으킬 생각이 딱히 없는 C는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알싸하게 타들어가는 담배 연기가 몸 안을 가득 채웠다가 나갔다. 바닥에 드러누워 한동안 까만 하늘을 보고 있던 N이 담배의 지독한 냄새 사이로 말했다.


  “나 말이다.”
  “뭐.”
  “...나... 이제 말이다.”
  “아, 새끼. 뜸 그만 들이고 얘기해. 밥 하냐?”
  “미친 새끼.... 썰렁하게.”


  N이 투덜거리며 발을 들어 등을 돌리고 있는 C의 어깨를 꾹 밀었고 그의 검은색 후드티셔츠 위에는 N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1초, 2초. 폐 속의 연기를 억지로 참고 있던 C는 결국 세게 숨을 뱉어내고 말했다.


  “뭔데. 질질 끌지 말고 말해봐.”
  “...나 이제-”


  C는 N의 말을 기다리며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의 불똥을 공터에 가득한 어둠속에 손가락 끝으로 튕겨 날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N이 중얼거렸다.


  “나 이제, 너 안 볼 꺼다.”
  “뭐?”
  “......”


  갑작스런 선언에 어리둥절해진 C가 고개를 돌렸다. N이 끙끙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 엉성한 폼으로 몸을 털더니 다시 의자에 앉았다. 손끝에는 용케도 불꽃이 살아 있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C는 그런 그를 향해 몸을 틀었다.


  “뭔 자다 옆구리 긁는 소리야.”

 

  C는 황망하게 웃었다. 웬 계집애 같은 농담을- 그러나 붉은 눈의 N은 진지했다. 혀가 꼬이는지 빈 입을 오물거리던 N은 빈손을 들어 입가를 문질러 내고 볼을 부풀려 몇 번 숨을 들이마셨다 뱉었다. 그리고 여전히 휘청거리며 말했다.

 

  “...진짜야. 너 안 볼 거라고.”
  “뭐야,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냐, 내가 미쳤냐? 술 처먹고 장난하고 있게.”
  “너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영문을 모르는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C를 보며 N은 짧은 담배를 세게 빨아 들였다가 길게 연기를 뱉었다.

 

  “진짜, 나 이제 너 안 볼 건데...”
  “...”
  “가기 전에 한마디만 하자.”

 

  그가 담배꽁초를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어둠 속으로 빨간 불이 호를 그리며 날아가 희미해졌다. 무의식적으로 눈으로 불길을 쫒고 있는 C에게 N이 말했다.

 

  “너 좋아한다. 새끼야.”
  “....뭐?”

 

  그가 농담을 하는 거라 생각한 C는 웃음기를 띠우고 N을 보았지만, 그의 얼굴에 장난기 같은 건 없었다.

 

  “너 좋아 한다고. 몰랐냐?”
  “....”
  “그냥 친구로 좋아하는 게 아니고, 너랑 자고 싶다, 이 말이다.”
  “...미친 새끼, 갑자기 너 뭔 헛소리야. 뭐야, 유행하는 새로운 유머냐?”

 

  C는 포기하지 않고, N의 진지한 마음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웃었다. 적어도 C가 생각하는 자신은 누군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긴 시간 그와 알아온 N이라면 그걸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매끈하게 잘생긴 얼굴에는 그 반의반만큼의 다정함도, 유쾌함도 없었다. 큰 키, 아름답지만 사나운 눈, 매력적인 모양의 입 안에서 아무렇게나 던져지는 거친 말,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고루함과 경멸을 오가는 단조로운 표정, 그의 작은 머리통 속에 든 생각은 늘 잔인하고 무신경했으며 그로 인해 누가 상처를 받든, 그 상처가 자신에게 돌아와 해를 입혀도 아무 상관없는 듯 살았다.
  혹여, 그의 겉모습을 보고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가온 사람들을 마음껏 이용하고 조롱하다가 질리면 이내 등 뒤로 던져버렸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양심의 가책 없이 마음껏 괴롭히고 모멸했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그를 피해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누군가 다가오든, 결국 그의 잔인함에 질려하며 손사래치고 떠나가든 그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그의 옆에 오랫동안 있어주었던 N. 그는 C에게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없이 ‘그냥’ 있었다. 술을 꺼내들면 따라붙는 술잔처럼, 담배를 물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불처럼 그냥 고개를 돌리면 N이 함께 있었다. 그렇게 N은 그가 오랫동안 아무런 거스름이나 분란 없이 옆에 둘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것도 끝난 것 같아 보이지만.

 

  N의 말을 믿지 않으려는 그의 웃음을 바라보던 N은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버럭 소리쳤다. 공터에 N의 혀 꼬인 목소리가 울렸다.

 

  “귓구멍이 막혔나?! 너 좋다고! 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게 네가 좋다고! 니 생각하면 잠도 못 자겠고, 이젠 네가 좀만 똑바로 쳐다봐도 미치겠다 말이다! 그니까 이제 너 안본다고! 됐나!!”

 

  악을 박박 쓰던 N이 자리에서 약간 휘청거렸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힘이 풀리는 다리로 제대로 서려고 애썼다. C는 그런 N을 이젠 웃음기를 지워낸 무표정으로 큰 눈을 깜빡이며 올려다보았다. N은 술 냄새가 나는 숨을 내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역겹지? 기분 더러울 거다. 이런 말들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 나는 잘 아니까. 그래. 잘 알아. 그니까 이제 너 안 본다는 거야. 그래도 꼴에 사나이라고, 네 앞에서 이 따위로 찌질 하게 구겨지는 건 싫은데. 이렇게라도 말하지 못하면 답답해 뒤져버릴 거 같아서, 이렇게 술이라도 처먹고 얘기하는 거다. 그니까, 그냥.. 그냥 넌 이거 듣고 잊어버려. 술 먹은 개새끼가 혼자 헛소리 지랄했다 생각해버려라. 내가 이제 네 앞에 안 나타나면- 너도 이 더러운 기분 다 잊을 수 있을 거다.”

 

  주절주절 쏟아지는 목소리 틈의 어지러운 술 냄새처럼 정신없이 마음을 고백한 그가 몸을 휑하니 돌렸다. 얇은 그의 남방이 가을밤의 바람에 펄럭였다. 이렇다 할 반응 없이 N을 보고만 있던 C도 얼른 몸을 일으켰다. N이 휘청거리며 두어 발자국 걷다가 말했다.

 

  “나도 네 잘난 면상 안보면, 시커먼 사내 좋아한다고 깝치는 이 미친 생각도 좀 잠잠 해 지지 않겠냐.”

 

  등 뒤의 C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N은 아랫입술에 힘을 주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털면서 그대로 자리를 뜨려는 N을 이윽고 C가 불렀다.

 

  “N.”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
  “N, 잠깐 기다려봐.”
  “됐으니까 꺼져. 씨, 괜히 다정한척 쑈 하지 마. 그딴 목소리 진짜 좆같아.”

 

  N이 독하게 눈을 모로 뜨며 고개를 돌려 C를 노려봤다. 술과 참담함에 엉망으로 붉어진 조그만 얼굴을 들자, N의 두려움과는 달리 태연한 표정을 한 C가 보였다. 그에게 익숙한, 자주 C의 표정을 채우고 있는 환멸도 비아냥거림도, 가끔 필요에 따라 꾸며 낸 어색한 다정함도 없는, 그저 평범한 표정이었다.
  아니, 입 끝에 힘을 주어 애써 누르고 있는 저 표정은 미묘한 미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긴 시간 곁에 있었음에도 늘 그랬듯 N은 그의 마음과 표정을 읽을 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결국 좋아하게 되었어도, 닳도록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지겹도록 그의 말을 들어도 C의 본심과 행동에 대한 N의 예측과 해석은 늘 빗나갔다.

  지금도 그랬다. 여자고 남자고, 그에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들을 늘 환멸하고 회의하는 그였는데, 친구라고 옆에 뒀더니 이러고 앉아 있으니 당연히, 그리고 자주 그러했듯 경멸의 욕지거리나 쏟아 내고 끝날 것 같은 이 고백에, C는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하려는 N에게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웃는지 찡그린 건지 읽어내기 힘든 조각난 미소를 걸고.

 

  N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에게 걸어오는 C를 피하는 것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C는 여전히 읽기 힘든 표정으로, 특별할 것 없는 억양으로 그에게 물었다.

 

  “왜? 내 목소리가 그렇게 이상해? 싫어?”
  “...”
  “진짜 좋아하는 거야, 마는 거야?”
  “야, 너 지금 나 비꼬는 거냐?”

 

  N이 발끈하자, C의 미묘한 미소가 결국 입술이 벌어지며 결국 웃는 표정이 된다. 버릇처럼 왼쪽 입술이 밀려 올라간 서늘한 미소에 N의 가슴이 따끔거렸다. C는 코끝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 좋아한댔다 꺼지랬다, 역시 장난치는 건가 해서.”

 

  그에게 다가온 C에게서 뒷걸음질하는 것을 멈춘 N은 이를 악물었다. 무슨 의미였는지,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고도 묻는 C. -그를 왜 좋아하게 된 거지? 이렇게나 거들먹거리고 이렇게나 사람 마음 후벼 파는 재수 없는 새끼인데.- 흔들림 없이 N을 똑바로 보고 있는 C의 또렷한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는 어금니에 힘을 주고 중얼거렸다.

 

  “그래, 장난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 그 재수 없는 목소리 듣고 싶어 뒤질 거 같다. 됐냐?! ...너 진짜 거지같은 새끼인거 아는데, 그런데도 좋아. 그래서 죽을 거 같다. 이런 게 한심해서 몇 번을 너 안 보려고 진짜 애썼는데, 정신 차려 보면 너 찾아내서 만나고 앉았더라. 하지만 나 진짜 이제, 너 안 볼 거야. 난 이제 너 없이 살 거야, 진짜.... 난...”

 

  N은 말을 잇지 못하고 간절한 눈을 겨우 그에게서 돌려 발끝을 바라보았다.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높은 목소리를 쥐어짰다.

 

  “난 어떻게 하면 좋냐? 아- 다 싫다... 이건 정말, 이런 나도 싫고- 너도 싫고... 다 싫어!”

 

  C는 그런 그를 고개를 비스듬히 꺾고 바라보고 있다가 여전히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비틀거리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가 뻗은 손이 어깨에 닿기 무섭게 N은 거칠게 쳐냈다.

 

  “씨, 건들지 마!”
  “...내가 뭐가 좋아?”
  “닥쳐, 나도 몰라, 미친놈아.”

 

  손바닥 안에 숨어 버릴 것처럼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를 향해 몇 번을 입을 벙긋 거리던 C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시선에 흰색 운동화로 비척거리는 N과 흑갈색 로퍼가 번들거리는 C, 두 사람의 마주선 신발 끝이 보였다.

 

  “...너 나 알잖아.”

 

  들릴락 말락 하는 그의 목소리에 내내 한숨만 들이 내쉬고 있던 N이 손바닥에서 고개를 들고 따지듯 왈칵 말했다.

 

  “뭘!! 니가 뭐 어떤데!”
  “...솔직히, 별로잖아. 친구로든, 그냥 지인으로든. 아니 지나가다 만나는 새끼로도 별로잖아.”

 

  진심인지 또 꾸며낸 놀이인지. 제법 자조하는 듯한 C의 넓은 어깨가 갑자기 둥그렇게 수그러들어 보이자, N은 금세 C에 대한 불쾌함을 잊고 연민과 호감을 솟구쳐 올렸다.

 

  “씨, 세상에 너보다 더 인성 더러운 새끼는 쌔고 쌨거든? 지들이나 잘 하라 그래.”
  “미친놈이라고 지랄하더니만, 갑자기 왜 편을 다 들어?”
  “......뭘. 사실이잖아. 니가 뭐- 얼마나 뭘 어쨌다고...지내들이 뭘 어쩌지 못하니까 괜히... 지들은 뭐 잘났나...”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C는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붉은 볼로 시선을 피하는 N을 바라보았다. 이다음은.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걸 그가 제대로 알 리 없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C의 목뒤를 잡아서 품으로 슬쩍 끌어 당겼다. 뭘 어쩔 건지 정하지도 않고 이렇게 하는 건 N을 괴롭히는 짓이겠지. 하지만 N의 기대와 회의가 교차하는 흥분한 얼굴이 재밌다.


  그의 앞에 서서 그에게 고백해오던, 머리가 짧고 길던, 나이가 적고 많던 남자와 여자들. 그 사람들의 표정도 지금의 N과 모두 비슷했지. ‘너를 좋아해’ 그들이 그에게 간절하게 고백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은 차가워졌다. -와, 나를 좋아해? 정말이야? 왜?-


  그의 목 언저리를 잡은 손길이 꾸며낸 부드러움임을 눈치 챈 N은 얼굴을 들고 사납게 말했다.

 

  “놔라.”
  “내가 좋냐?”
  “......”
  “왜?”
  “놔.”

 

  C는 N이 그의 손을 떨어내려는 걸 더 움켜쥐었다. 손 안의 강아지나 고양이가 발버둥 칠수록 더 옥죄곤 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나서 왠지 들떴다. C가 다그치듯 물었다.

 

  “야. 말해봐. 왜 좋아하는데?”
  “왜는, 아. 손 놓으라고!”
  “그럼, 너, 나 생각하면서 자위하고 그러냐?”
  “...!!”

 

  반사적으로 입을 꽉 다문 N은 다시 귀까지 빨개졌다. 안 그래도 알콜 기운에 붉은 얼굴이 이젠 까매 보일 정도로 붉어졌다. N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서둘러 C의 손에서 벗어나 최대한 빠르게 걸어가 버렸다. C는 그런 그의 뒤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갔다. 목줄을 놓친 강아지를 쫒아 따라가듯, 그리고는 재빨리 목줄을 밟듯이 그의 손을 낚아챘다.

 

  “야. 이리와 봐.”
  “놔! 너 안 볼 거라고 새끼야!”
  “안 보긴 왜 안 봐. 나랑 자고 싶다며.”
  “......뭐?”

 

  그리고는 자신을 돌아보는 그의 휘둥그레 한 얼굴을 재빨리 끌어 당겨서 입을 맞췄다. 그의 술과 담배 연기에 젖은 혀의 쓴맛이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꽉 참고 그의 벌어진 입에 혀를 밀어 넣는다. 그의 혀에 열심히 혀를 문질러 본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멍하니 있던 N이 얼른 C의 어깨를 밀어냈다.

 

  “너 지금, 뭐-뭐- 뭐하는 거야!!”
  “뭐긴... 키스.”


  달달 떨리는 손등으로 입술을 가린 그가 말했다.


  “.....왜. 왜 하는 건데?”
  “그냥 하고 싶어서. 난 자는 건 여자고 남자고, 별로 안 따져.”
  “...뭐?”
  “할 때는 남자고 여자고 별로 안 따진다고, 그리고. 뭐 너 정도면 나쁘지 않고...”
  “.......”
  “하고 싶어? 지금 하러 갈까? ...너 바텀이지?”


  잠시, 약간의 기대를 담고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눈이, 웃음기를 담은 C의 말이 길어질수록 점점 어두워지고 쓸쓸해졌다. C에게서 두 어 걸음 뒤로 물러서는 그의 눈에 약간의 물기가 번졌다. 그는 이를 악물면서 입술을 소매 끝으로 쓱 닦아내고 중얼거렸다.


  “너는 개새끼야.”
  “......”
  “진짜 쓰레기야. 너는.”


  연신 즐겁다는 듯이 실실 거리며 웃던 C의 웃음이 조금 굳었다.


  “왜, 거지같은 새끼라도 좋아한다더니? 그새 마음이 변했어?”
  “.......”


  아직도 입술 끝을 꿈틀거리며 웃고 있는 C를 괴로운 표정으로 노려보던 그는 다시 몸을 돌려서 골목 안으로 비틀거리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C는 금세 미소를 걷어낸 시시한 표정이 되어서 어둠속을 바라보며 멀거니 서 있다가 품 안에 손을 넣어 다시 담배를 꺼냈다. 거의 빈 갑 안을 휘적거린 그의 손가락에 걸려든 담배를 입에 물자 바스락거리는 종이 필터에서 담뱃잎 냄새가 뭉클 올라왔다.


  술이고 담배고, 너무 써서 싫어. 지독해. C는 숨을 꾹 참았다가 급히 담배를 빨아들여 불을 붙였다. 연기가 폐를 한 바퀴 돌아 나오고 그 악취가 숨 안에 겨우 녹아들자 그는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길을 걸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검은 천장과 함께 이유 없는 피로가 몸 위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지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던 때처럼, 뚝, 하고 눈 안의 어두움이 깨어지고 C는 잠에서 깨어났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 그는 길게 하품을 하고 굳은 팔 다리를 움직여 기지개를 켰다. 창문 너머로 흘러 들어오는 빛이 아직 푸릇한걸 보니 새벽녘이다. 그는 잠이 몰려가는 동시에, 잠들기 전 입에 물고 있던 담배의 잔 기운을 느끼며 욕실로 가서 양치질을 시작했다. 이를 닦은 그는 혀를 길게 내밀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더러운 혀에 닿았던 N의, 사랑의 고백으로 뜨겁던 그의 혀를 생각해 본다. 그의 온도와 상관없이 C의 얼굴은 건조하고 무표정하다. 그러나 거울너머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또 다른 C의 표정은 새벽이어서 일까 우울하고 서늘해 보인다. 거울 너머의 우울한 C가 말했다.


  ‘그러지마. 기대하지 마. 너는 잘나지도 멋지지도 괜찮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아. 더러운 담뱃재 같은, 술 먹은 다음날의 숙취 같은. 그런 찌꺼기 같은 새끼일 뿐이야. 너에 대해 알게 되자마자 진력을 내게 된, 그 순진했던 사람들을 생각해 봐. 너의 곁에 천천히 다가왔다가 너에게서 순식간에 도망친 사람들을 생각해 봐. 그러니까, 바라지 마. 기대하지 마. 너는 담배에 절어 있는 주제에 담배 냄새를 싫어하고 술을 퍼마시는 주제에 술 냄새를 싫어하는- 그런 멍청한 쓰레기일 뿐이야.’


  C는 거울을 들여다보던 시선을, 많은 잘못을 신랄하게 지적당한 아이처럼 뚝 떨어뜨렸다. 떨어진 그의 시선 끝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세면대를 꽉 쥔 자신이 손이 보였다. 그는 서둘러 다시 칫솔을 들어 잔뜩 치약을 짜내서 한 번 더 양치질을 시작했다. 입 안을 채우는 이물감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그러나 반복되는 양치질도 그의 입 안에 느껴지는 역겨움을 몰아내지 못했다.

 

 

 

- Please, Please., END.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7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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