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하달리 | 2018.02.20 22:54

드디어



  소년은 벌써 3일째, 폭이 좁은 갓길의 외진 버스정류장에 해가 질 무렵부터 서 있었다. 서 있는 내내 허공을 향하고 있는 듯 보이는 그의 시선은 4차선 너머 검은 들판을 가로질러 멀찍이 서있는 높은 공장굴뚝의 점멸하는 붉은 전구를 향해 있었다.

  똑같이 생긴 세 개의 거대한 굴뚝 꼭대기와 그 몸통 중간에 두 개씩 붙어 서로 번갈아가며 깜빡거리는 붉고 노란 불빛 때문에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보이는 저 구조물에 특별한 의미나 가치가 있어서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못 박히듯 꼼짝 않고 서서 그 불빛들을 바라보거나 바닥의 돌을 도로를 향해 신발 끝으로 툭툭 차며, 소년은 밤 10시 정도까지 정류장과 그 근처를 고인 물에 떠있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11시가 되기 전 즈음에 정류장에 도착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못 이겨 그곳을 떠났다.

 

  오늘도 소년은 그 곳에 서서 도로를 통과하며 차들이 던져 놓은 먼지가 뿌옇게 앉은 정류장 구조물에 등을 기대고 길 너머, 거대한 구조물의 불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몇 대의 버스와 택시가 갓길에 서있는 그의 앞에 속도를 줄였다가 시선도 주지 않는 그의 옆을 다시 속도를 내서 지나쳐 버렸다. 그런 차들 몇 대를 제외하고는 그의 앞 도로 위를 달리는 많은 차들은 후미의 붉은 불빛으로 그의 몸을 잠시 물들였다가 도로의 소실점 끝으로 망설임없이 사라졌다.
  간혹 신호를 잘못 만난 차들이 정류장근처에서 속도를 줄이며 그의 앞에 늘어서도 검은 창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고, 소년 역시 차 안에 들어앉은 사람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혹여라도, 그를 만나고 싶지 않은 학교의 친구들이라든가 그와 단 둘이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늦은 밤의 승객에게는 인적 없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의 모습이 섬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를 만나기 기대하지 않듯, 소년도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여름이 끝나가서 짧아진 해에 밤의 바람은 매서웠지만 소년은 턱을 덜덜 떨면서도 그 곳을 떠나지 않았다. 하복 소매 아래로 드러난 그의 팔을 밤바람이 차갑게 문지르고 지나가자 코가 근질거리며 재치기가 나왔다. 코끝에서 재채기를 꾹 참아낸 덕에 슬쩍 비친 눈물로 물어진 소년의 눈에 차들의 빛과 굴뚝의 붉은 빛이 서너 개로 번져 보였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는 소년은 어딘가 따뜻한 곳을 찾고 싶지만, 그는 갈 곳이 없었다.
  물론 저 길 끝 300여 미터에서부터 노란 빛을 뿌리며 다가오고 있는 108번 버스를 타면 그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갈수도 있었다. 그러나 집의 검은 창은 자정이나 가까워야 불이 켜질 테고 추위에 무릎을 떠는 소년이 싸늘하고 검은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해도 그의 떨림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추위를 이겨내려 힘을 잔뜩 주고 있던 어깨를 털고 눈을 꿈뻑였다.


 

  사실, 소년은 원하는 것이 없었다. 아직도 하복을 입고 있는 소년의 몸에 몰아치는 찬 밤바람에 소름이 돋아도, 그 살을 감쌀 두툼한 옷도 필요 없었다. 물론, 기다리고 있는 것도 없었다. 긴 시간 목소리를 내지 않아 단 한줄의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몇 번을 헛기침을 했어야 할 테지만, ‘안녕? 왜 안 들어가고 아직 여기 있어?’ 라고 그를 알아본 반 친구가 인사를 건넨다 해도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소년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소년 역시 무엇도,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다.
 

  소년은, 여전히 시선은 길 너머의 불빛을 향한 채로, 갓길의 하얀 선 위에 양 발을 꼭 맞추고 서서 발바닥의 무게중심을 앞과 뒤로 번갈아 옮겨가며 발돋움을 했다. 그때 그런 소년의 몸 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택시가 아슬아슬하게 스쳐갔다.
  깜짝 놀랐던 소년은 주춤거리며 할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선 위에서 발돋움을 했다. 이내 앞뒤로 흔들거리는 몸의 움직임이 맘에 들었는지, 신이 나게 양 팔까지 앞 뒤로 움직여대는 일에 잔뜩 몰두하고 있던 소년은 갑작스럽게 어두운 도로를 온통 울리는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도로 끝에서 굉장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저 덩치 큰 차량은 커다랗고 높은 화물칸을 거북이 등처럼 단단하게 올리고 있었다. 희고 네모난 화물칸 양쪽 위에도 굴뚝의 것처럼 작은 붉은 색 전구가 반짝 거렸다. 트럭은 노랗고 하얀 라이트를 성급하게 깜빡이고 위협적인 경적소리를 연이어 울리며 갓길에선 소년을 향해 경고했다.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덤프트럭을 보며 소년은 두 발자국 크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차량이 소년의 앞을 막 통과하려는 그때, 소년은 도움닫기를 하듯 바닥을 크게 박차고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뒤로 물러서는 소년의 모습에 잠시 방심했던 트럭 운전기사는 성급히 브레이크 페달을 깊게 밟았지만, 무거운 차의 가속도는 브레이크 장치의 작동을 무시하고 도로를 찢는 굉음과 함께 검은 바닥을 더 검게 태운 타이어 자국을 길게 남기며 트럭을 미끄러뜨렸다. 십여 미터를 미끄러지고 겨우 멈추어선 트럭을 따라 마주오던 차량과 트럭을 뒤 따르던 차들도 성급하게 자리에 멈추어 섰고 고요하던 도로는 사람과 기계가 내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창을 열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 드디어, END.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7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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