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하달리 | 2018.02.20 22:35

5분




  여름비가 내렸다. 아침나절은 잡아먹을 듯 푹푹 찌는 맑은 하늘이더니, 10시도 채 지나기 전부터 순식간에 검어진 하늘이 찡그리다 못해 비를 툭툭 떨궜다. 그래도 나는 온종일 비가 내렸으면 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의례 두통도 따라와.- ‘그’가 하던 말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가 내렸으면 했다. 어차피 덤벙거리는 그이지만, 오늘은 날까지 맑았으니 당연히 우산을 챙기지 않았을 것이고 오후까지 이어 내리는 이 비를 온통 맞으며 이리저리 뛰어 다닐 테고, 재빠른 우산장수들이 여기저기서 우산을 내밀며 아무리 사라고 졸라도, 그라면 젖은 손으로 지갑을 꺼내기 싫단 시답잖은 이유로 그냥 우산들을 지나쳐 뛰어갈 것이 뻔하기때문이다.
  그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더 좋을 것 같다. 약도 챙겨먹지 말고 한 일주일정도 죽도록 앓아서 살도 몇 킬로그램 빠지고 지금보다 더 앙상해지고 저 불쌍해지면 좋겠다. 나에게 전화해서 -약 좀 사다줘. 죽을 것 같아.- 라고 앓는 소리도 하지 못할 테니, 미련한 그라면 일주일은 내리 앓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있는 나 역시 우산이 없어 대충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세워둔 차로 뛰어갔다. 비는 점점 거세어지는데 덩달아 비에 젖어 미끄러지는 손에 자동차 키를 몇 번이나 바닥에 떨어뜨렸다. 혼자 몇 마디 욕을 구시렁거리고 겨우 차 안에 들어가 앉으니 그 잠깐도 비를 맞은 것이라고 옷과 얼굴이 축축하다.


  그대로 시동을 걸어 에어컨을 틀었다. 서늘하지만 끈적거리는 느낌은 사라져 기분은 훨씬 좋다. 비는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세어져서, 이제 앞 유리에 떨어지는 비는 비라기보다 세차장의 물줄기 같다.

 

  세차장- 그날도, 세차는 다음에 하면 안 되냐는 나의 투정에도, 기어코 오늘 하겠다고 우기면서 그는 세차 기계로 차를 끌고 들어갔다. 보란 듯 얼굴을 굳히고 있는 나는 개의치도 않던 그는 창도 열지 못하는 5분여의 사이에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를 향해서 앙칼지게 몇 마디 던졌고 그도 지지 않고 몇 마디 거친 말을 뱉었다. 세차기계의 물줄기가 차에 묻은 거품들을 씻어 내릴 즈음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차를 빼자마자 바로 차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헤어졌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돌연 비가 오는 것처럼 예상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비에 따르는 두통을 대비한 약이나 흐린 날 미리 준비하는 우산처럼 그 상처들에 대해 대비하거나 치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털털 거리는 엔진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차를 출발 시켰다. 갈아 끼우는 것을 자꾸 잊는, 낡은 와이퍼가 창을 긁으며 움직이는 소리가 끅끅거린다. 순간, 와이퍼의 마찰음을 따라하며 킬킬거리던 그의 유쾌한 옆모습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쏟아지는 비에 시야가 흐린데 물컹물컹 올라오는 눈물 때문에 이젠 한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

 

  두통약이 있어도. 우산이 있어도. 어느 정도의 통증이라든가 비에 젖어버리는 바짓단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결국 나는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5분 정도 울어야 했다.

 



- 5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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