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ing Pulses

하달리 | 2018.02.20 21:43

Counting Pulses



  J는 까마득한 댐의 높은 난간을 끙끙거리고 넘어가서 디딘 좁은 턱에 뒤꿈치만 겨우 걸치고 뒤로 기댄 난간에 양팔을 걸쳐 꽉 잡고 섰다. 이제 가을이 다가오는 서늘한 계절의 바람에 얇은 남방만 입고 선 그의 몸이 불규칙적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아래턱이 덜덜거리는 그의 마른 얼굴. 야윈 뺨은 버석버석하고 눈은 붉게 충혈 되었지만 눈물도 물기도 없는 눈이 불안하게 깜빡거린다. 난간을 쥔 손을 쥐었다 피었다 하는 이 남자는, 이제 곧 뛰어 내릴 참이다.

 


***

 

 

  정각 11시. 타이머를 맞춰놓은 TV가 켜지면서 정오전의 뉴스를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시그널 뮤직과 딱딱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카랑카랑 비보와 속보를 전한다. J는 TV에서 등을 돌렸던 몸을 뒤척였다. 반쯤 닫혀 있는 커튼을 투과하고 오늘 하루의 아침 햇빛이 방안을 뽀얗게 밝힌다.
  지난밤 잠들기 전 몇 개 비웠던 맥주 캔과 반쯤 남은 병을 기어코 비워내서 떨어질듯 위태롭게 쓰러진 술병이 침대 옆 협탁에 놓여있다. J가 찡그리며 몸을 일으키니 그의 움직임을 따라 방안 가득한 햇빛에 먼지가 아른아른 떠 나닌다. 그는 눈을 반쯤 감고 손만 더듬거려 리모컨을 찾아내서 텔레비전을 껐다. 침대 옆 작은 안락 의자에 리모컨을 던진 그가 협탁 위를 뒤적거려 자신의 안경을 찾아내어 주섬주섬 쓴다.
  발을 끌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그는 냉장고를 열고 냉수를 꺼내 마신다. 거실의 시계를 보니 11시 8분. 잠깐, 회사는? 하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이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집에 들어앉은 지 3주가 다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하품을 길게 하고 뒷목을 문지르며 다시 침실로 걸어왔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잠이 덜 깬 얼굴을 문지르다가 그는 그대로 침대에 다시 쓰러져 누웠다. 목이 간질거리고 감기기운이라도 오는 건지, 머리도 욱신거린다. 지난밤의 술 덕분에 속도 까칠하다. 그는 다시 안경을 벗어 협탁에 놓고 입맛을 다시면서 방 밖을 향해 소리친다.

 

  “여보, 나 커피 좀-”

 

  커피 향기를 기다리던 그는 다시 잠에 빠지고, 집 안은 다시 침묵한다.

  잠을 방해하는 전화 벨소리에 J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오후 3시가 다 되어 있다. 몇 번 울리던 집전화가 응답기로 바뀌는 소리가 난다. 소곤거리는 쑥스러운 인사 목소리가 응답기계에서 재생된다. 응답기에 녹음된 잔뜩 긴장한 여자가 말한다. “잠깐 자리 비웠으니 그냥 끊지 마시고 메시지 남겨주세요, 바로 연락드릴게요.” 삐이- 신호음이 떨어지고 맞은편 수화기에 있던 사람이 기침을 두어 번 하고 말한다.

 

  “J. 나야, T. 전화 좀 받아. 집에 있어? 핸드폰도 꺼져있고. 살아 있는 거야?”

 

  잠깐 잡음소리만 들리는 전화는 끊어진 것 같지 않다.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잖아. 그런다고 뭔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제 그만 청승떨라고.”

 

  J는 침대에 누운 채로 아직 잠이 붙은 눈을 뜬다. 멍한 시선을 깜빡이고 있는 그의 귀에 계속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내외 다음주에 S 만나러 갈 거야. 너도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가자. 점심시간 맞춰서 갈 거니까. 너희 어머니께 얼굴도 보여주고. 어머니 요즘 너 때문에 계속 우시더라...”

 

  J는 겨우 몸을 일으키고 목을 천천히 빙 돌렸다. 목에서 작게 두둑 하는 소리가 나고 개운해진다.

 

  “...J. 듣고 있어?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이젠 받아 들여야 해.”

 

  J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거실의 전화기로 걸어갔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녹음중인 응답기는 바쁘게 빨간불이 깜빡거리고 있다. 그는 눈을 내리 깔고 전화를 바라보았다. 전화기가 계속 말한다.

 

  “너 걱정하고 있는 가족들도 생각해줘. S도 마찬가지고. 그녀가 지금 널 보면 뭐라고 하겠어. 전화 줘. 오후 늦게라도 받을 테니까. 그리고 어머니한테 전화 좀 해. 그럼 또 전화할게. ...기운 내.”

 

  ‘삐- 녹음되었습니다. 오후. 03.시. 01.분.’ 따박따박 소리 내어 녹음 시간을 말한 전화기가 다시 조용해진다. 그는 목을 들어서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을 둘러본다. 기울어지는 햇빛으로 붉은 빛을 가득담은 거실의 소파 옆, 그녀가 마지막으로 꽃아 두었던 하얀 데이지 꽃이 노랗게 말라붙은 유리 화병에 햇살이 반짝거린다. 그녀가 없으니 꽃도 말라비틀어진다.
  그는 바싹 마른 목에 겨우 침을 삼키고 좀비처럼 비척거리고 걸어서 거실 한쪽의 작은 피아노로 다가간다. 차가운 피아노의 표면을 더듬으니 가슴속에 차오르는 그녀 생각에 폐가 터질 것 같아 그가 벅찬 한숨을 두어 번 내쉬었다.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아노뚜껑 열었다. 그의 가슴속 감정처럼 뿌연 먼지가 일어난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베이지색 린넨 원피스를 입은 S가 어깨를 덮는 금발 곱슬머리를 손수건으로 질끈 묶고 건반에 손가락을 올려놓는다. 그녀의 하얀 손목, 왼쪽에는 얇은 싸구려 스테인리스 손목시계가 하나. 오른쪽 손목에는 화단정리를 하면서 화분을 옮길 때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에 붙인 자그마한 밴드가 하나. 메트로놈처럼 고개를 양옆으로 까딱거리며 그녀가 발랄하게 ‘반짝 반짝 작은 별’을 연주한다. 장난처럼 딩동 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복잡해지면서 변주가 된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연주를 듣던 J의 입에 미소가 걸리고 그녀의 피아노 곁으로 다가선다. 별 가루처럼 반짝거리는 그녀의 연주를 듣는 동안 그녀는 피아노 옆의 그를 올려다보기도 다시 건반을 보기도 한다. 살랑거리는 그녀의 고개. 건반 위를 춤추듯 뛰어 다니는 그녀의 아이 같은 손가락. 발랄한 건반 소리. 그녀의 머리카락에 부딪혀 부서지는 햇살과 몸을 흔드는 그녀에게서 나는 그녀의 작은 화단의 흙 내음. 그녀는 연주를 거의 마칠 즈음 다시 단조로운 음색을 연주 하며 말한다.

 

‘이거 다치면, 우리 산책 나가요. T와 H의 집 방향으로 한 시간쯤 걸어요. 그쪽에 피어 있는 장미 넝쿨을 보러 가고 싶어요. 오는 길에는 우리 화단에서 데이지 꽃 한 다발을 꺾어 오고, 간단하게 저녁을 만들어 먹어요. 그리고 저녁에 영화를 봐요, 내가 팝콘을 만들어 줄게요. 조금 더 배고파지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도 되고. 어때요?’

 

  남자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그녀의 옆에 앉는다. 피아노위에 올려놓은 컵에서 나는 커피향기가 건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에게 흘러내린다. 그는 그렇게 S가 나머지 연주를 마치는 동안 그녀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 연주를 끝낸 그녀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나서 옆의 J를 바라본다. 자신을 미소 띤 얼굴로 보고 있는 그를 보던 S는 손을 들어 손등으로 그의 하얀 뺨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러나 깊고 맑은 눈으로 그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그녀가 말한다.

 

‘사랑해요. J.’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손가락에 끼워진 둘의 반지를 내려다보다가 그녀의 반지와 손가락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그런 그를 내내 사랑스러운 미소로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고 그녀의 뺨과 입에도 정성스럽게 입을 맞춘다.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관자놀이 너머로 넘겨주며 바로 눈앞에 그녀에게 그가 말한다.

 

‘S. 나도 사랑해.’

 

 


  그는 피아노에 기대고 있던 몸을 퍼뜩 일으켰다. 그의 급한 움직임에 눌린 피아노 건반이 낮고 깊은 비명 같은 불협화음을 낸다. 그는 울 것 같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지만 울지 않는다. 마르고 충혈 된 눈이 껍껍하게 깜빡인다.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구겨진 남방을 바쁜 손길로 턴다.

 

  “그래, S. 우리 산책 가야지. 그리고 T와 H의 집을 가는 길의 장미를 보고, 돌아오면서 화단에서는 데이지 꽃을 꺾자.”

 

  J는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얇은 남방만 걸치고 있는 그의 몸이 추워 보이지만 눈을 크게 뜬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한산한 오후의 길을 주머니에 손을 꽂고 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로 걸어간다. 정원에 나와 노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도,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엄마들의 높은 목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정신없이 길을 걷는 그는 마치 들어가 쉴 곳이 없는 좀머씨 같다.
  걷다보니 큰 길까지 걸어 나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여전히 땅만 보고 걷는다. 그의 옆으로 지나가는 차 들이 일으키는 먼지에도 그는 망가진 기계처럼 앞으로만 걷는다. 트럭 몇 대와 자가용 몇 대가 속도를 줄이고 그에게 타지 않겠냐며 소리쳤지만 그는 대답은커녕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걸었다. 운전자들은 머쓱하게, 혹은 투덜거리며 그를 지나쳐 달려간다. J는 계속 걷는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공기가 차가워지고 차가 일으키는 바람이 위태롭게 그의 머리카락과 몸을 흔들며 지나간다. 어디에도 없는 장미정원과 데이지 꽃을 찾아서 그는 묵묵히 걷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라는 경고문이 붉은 페인트로 쓰여 있는 녹슨 패널이 덜렁거리는 철책을 넘어설 때 그의 손목에는 덤벙거리며 화분을 옮기는 그녀처럼 긁힌 상처가 생겼다. 손목을 틀어 들여다보니 멍하게 흰 자국이 났던 손목이 금세 붉어지고 피가 몽글몽글 맺힌다. 아야! / 여보? / J. 밴드 좀 가져다 줘요. / 그러니까 정원 장갑을 끼라니까. / 그럼 손이 둔해서 아무것도 못하겠는걸요. 그가 중얼거리는 건지 머릿속에서 울리는 건지 그녀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온다.
  상처 난 손목을 만지작거리던 J가 다시 고개를 들고 거친 수풀 속을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빽빽한 숲을 조금 걸어가면 까마득히 크고 넓은 댐이 있는 저수지의 경계선으로 갈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S와 J는 자주 어른들 몰래 이곳에 와서 시시덕거렸다. 댐이 물을 정기 방류할 때를 맞추어 가면 우르릉거리는 진동이 댐에서 멀찍이 떨어진 숲속의 땅까지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두 사람은 어깨를 맞대고 두려움만큼의 즐거움에 괜히 키득거렸다.


  억센 수풀 가지를 해치고 걸으며 그는 열심히 생각한다. S를 그렇게 만든 게 누구의 잘못인가. 하지만 그런 것을 수천 번 물어보아도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다. 녹음기처럼 계속 질문하는 그에게 그의 충혈 된 시선을 피하며 사람들은 말한다. ‘네 탓이 아니야, J. 그저 그녀가 그녀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것뿐이야.’ 모두들 말은 잘한다.
  그럼 그것은 오롯이 “연약”했던 S의 탓이란 말이겠지. 그녀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롤리 팝처럼 약을 처방해 준 의사의 잘못도, 의사인 냥 병신 같은 위로와 서투른 조율로 더욱 그녀를 상처 부추겼던 그녀의 주변인의 잘못도, 그녀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녀의 슬픔의 권태에서 도망치려 술이나 마시며 자신만을 위로했던 자신의 잘못도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틀렸다. 모두 유죄다, 유죄. 오로지 그녀만 무죄다.


  J는 비척거리면서 숲을 걸었다. 익숙한 길이어도 까만 어둠속에서 반짝거리는 댐의 경고등만 보며 방향을 잡기는 어렵지만 그는 해냈다. 숲에서 거의 벗어난 그의 눈앞에 거대한 댐의 희멀건 몸뚱이와 폭과 깊이를 알 수 없이 넓고 까만 저수지가 보인다. 어느새 떠오른 달이 일렁이는 물의 표면에 끝없이 빛을 흘려 내보낸다. 그녀의 빛나던 눈동자처럼. 그의 영혼까지 들여다보던 그녀의 눈처럼.


  아직 이마에 몇 개의 여드름이 남아 있던 어린 시절, 이 저수지의 까만 물을 바라보며 물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질려 보이는 얼굴로 S가 말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신을 피하기 위해서 강가에서 갈대가 된 님프가 있었는데, 결국 그 신은 갈대가 된 님프를 피리로 만들어 불었다지 뭐야. 그녀의 옆얼굴을 보며 J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끔찍한 이야기네. 멍하니 물의 일렁임을 보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치. 끔찍하지? 그녀의 치아 교정기를 낀 하얗고 자그마한 이빨이 귀엽게 반짝 거렸다.
  J는 이끼 냄새가 코에 벅차게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흙바닥에 쓰러졌다.

 

 

 

  부웅- 출발을 알리는 큰 뱃고동소리가 울린다. 희고 거대한 크루즈의 높고 두꺼운 굴뚝에 구름 같은 연기가 뭉클거리며 올라오고 막 항구에서 몸을 떼어내는 까마득히 높은 뱃전 난간에 몸을 내밀고 있는 그녀가 챙이 넓은 모자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한손으로 누르고 있다. 그녀의 손에서부터 길게 늘어져 항구에 서있는 그에게까지 연결된 붉은 리본이 바람에 팽팽하게 팔랑인다. 그녀가 배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와 이어진 리본을 채 놓지 못하는 그녀가 안타깝게 손을 뻗든 말든 배는 점점 육지에서 멀어져 떠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도 그녀의 안타까움을 따라 뛰었지만 배는 점점 더 멀어지고 둘의 리본은 끊어질듯 점점 더 팽팽해진다. 하지만 그도 그녀도 차마 끈을 놓지 못해 양손으로 더 단단히 틀어쥐었다. 떨어질듯 뱃전에 매달린 그녀의 하얀 모자가 거친 바다의 돌풍에 순식간에 그녀의 머리에서 저 멀리로 날려가 버린다. 부웅- 다시 한 번 고동소리가 고막을 산산조각 낼 듯 들려온다.

 

 

  J는 눈을 떴다. 차가운 땅에 몸을 웅크리고 누운 채 밤을 새운 그의 얼굴은 초췌하고 얼얼하다. 그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해가 아직 다 떠오르지 않은 채로 주변이 새파란 것을 보니 새벽녘인 것 같다. 그는 끙끙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의 흙을 둔한 손으로 털었다. 그때, 부웅- 정기방류를 알리는 뱃고동 같은 댐 관리소의 경고음이 울린다. 그의 발아래 땅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는 비틀거리며 까마득한 댐의 높은 난간을 끙끙거리고 넘어가서 디딘 좁은 턱에 뒤꿈치만 겨우 걸치고 뒤로 기댄 난간에 양팔을 걸쳐 꽉 잡고 섰다. 수문이 열리려는지 여기저기 붉은 경광등이 열심히 돌아가고 난간에 매달린 J와 그의 몸이 닿은 댐 전체가 흔들린다. 그의 몸이 경련하듯 덜덜 떨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포 때문은 아니었다.- 얼굴에 축축함이 느껴져 J는 바쁘게 눈을 깜빡거렸다. 눈앞에는 피어올라오는 물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두두 거리며 쏟아지는 거대한 물소리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찰나처럼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S의 도톰한 입술 끝이 사랑스럽게 말려 올라가던 행복한 미소. 그녀의 발랄하고 수줍은 연주. 작은 반창고가 떨어질 날 없었던 상처투성이의 S. 그것이 그가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 전부다.

 

 

***

 

 

  “...S. 잘 지냈어?”

 

  T는 손에 들고 왔던 데이지 한 다발을 들고 그녀 앞에 섰다. 하얗고 네모난 방. 죽은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 있는 앙상한 S는 잠들어 있지 않았는지 그의 인사에 금세 힘없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어두운 호수같이 깊게 꺼진 눈가에 내려진 검은 그림자와 겨우 숨을 삼키는 목젖의 움직임이 잘 보일정도로 바싹 마른 그녀는 이제 완전히 마른 갈대 같다. 그녀의 마른 팔에 길게 들어진 링거의 튜브에 말간 액이 점점이 흘러 그녀의 혈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T는 S의 비참한 모습에도 겨우 웃으며 그녀 옆 협탁에 데이지 꽃망울이 잘 보이게 내려놓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이 작은 방에는 침대와 그녀. 작고 단조로운 협탁과 약해보이는 보조의자. 철망이 빼곡한 높은 창하나 외엔 아무것도 없다.

 

  “H...는 몸이 아파서 못 왔어.”

 

  거짓말이다. 이곳까지 함께 왔지만 그녀는 오는 내내 차 안에서 울었고 도착해서 퉁퉁 부은 얼굴이 되어서도 눈물을 그치지 못해 결국 차에 남았다. 그녀는 그가 차로 돌아가서 안아줄 때까지도 계속 울고 있을 것이다. 뭔가 말하려던 T는 다시 입을 앙다물었다. 몇 분을 힘없이 눈을 뜨고 아무 말 없는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는 그녀 옆 작은 보조 의자에 앉았다. 그가 손을 뻗어 앙상하고 거친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S...저기... 음... J. 기억나?”
  “....”

 

  그러나 그녀는 J는커녕 눈앞의 T에도 관심 없어 보였다. 그녀의 말라붙은 가슴은 겨우 숨을 쉬듯 빠르게 할딱거리고 푹 꺼진 눈은 눈동자만 움직여 공중의 먼지를 보며 아슬아슬하게 희번득인다. 그는 가슴속의 울렁거림을 겨우 누르며 조그맣게 말했다.

 

  “있잖아....음... J...발견했어. 지난 주말에. 저기.. 강... 강 하류에서...”
  “......”
  “......미안해, S... 미안해...흑.."

 

  결국 그는 그녀의 앞에 고개를 꺾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눈물로 젖은 입술이 덜덜 떨리는 것을 이를 악물어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는 참지 못하고 결박된 그녀의 마른 손을 꽉 잡아 그 위에 이마를 기대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가 그렇게 말을 잇지 못하고 울고 있는 몇 분의 시간 동안 내내 조용히 누워 있던 그녀가 갈라진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놔...”
  “...S?”

 

  그녀를 향한 연민과 친구를 잃은 슬픔에 눈물로 푹 젖은 얼굴을 하고 있던 T는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공중을 보고 있는 그녀는 반쯤 뜨고 있는 눈을 힘겹게 깜빡였다.

 

  “...내놔...”
  “....S."
  “...네가 숨겼지?...내놔...내 술...내놔..”
  “S...정신 차려...”
  “J가 어저께 사 놓은 게 어디 있을 텐데.....”

 

  안타깝게 그녀를 바라보는 T의 슬픈 눈은 더욱 일그러졌다. 허공을 보며 그녀가 바싹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며 중얼거렸다.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입 꼬리가 불규칙적으로 연신 부들부들 거렸다. 말을 이을 기운도 없을 듯한 야윈 그녀의 턱이 움직이며 가느다랗게 말을 이었다.

 

  “J.... 우리... 저녁을 먹어요... 내가 제일 잘하는 메뉴로 할게요. 붉은 와인을 따르고 건배를 해요. 식사가 끝나고 조금 아쉬우면 맥주를 마시면서 별을 봐요... 오늘은 맑을 거라고 했고 화단은 내일쯤이면 꽃이 피겠지... 그럼 우리 그 꽃향기를 맡으러 산책을 가요.. 오랜만에 댐을 보는 거야... 우리는 어린연인들이 돼서 피크닉 매트에 누워 나무이끼 향기를 맡을 거야... 내가 데이지 꽃을 꺾어 갈게...내게 화관을 만들어 줘요... J...당신이 노래를 불러주면 나는 화관을 쓰고 춤을 춰야지... 맨발은 차갑지만, 우리 풀밭은 부드러우니까... 그래...H가 좋아하는 오렌지 샤벳을 사올까?... T가 올수 있으면 좋겠어요...바쁘면, 그래. 바쁘면 다음에 또 만나면 되지... 괜찮아... 미안해요.. 잠깐 자리 비웠으니까...그냥 끊지 말아요...금방 연락할...”

 

  중얼거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소곤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되고 갈라진 입술만 들썩이더니 그 움직임마저 그쳤다.

 

  “...S? S!"

 

  T가 그녀를 애타게 불렀지만 어린 새처럼 할딱이던 그녀의 마른 가슴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슬픔에 쳐져 있던 T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에게 달려든 T는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겨울 벌판의 갈대같이 그의 손길에 맞춰 힘없이 흔들렸다.

  짙고 선명하던 빛을 잃은 눈동자는 끌어내진 심해어의 눈처럼 탁해졌고 행복한 보리밭 같이 아름다운 금빛이었던 그녀의 머리 결은 내던져진 지푸라기 같이 빳빳해져서 베갯잇에 비벼지며 버스럭거렸다. 그녀의 차가운 뺨을 두드리고 어깨를 흔들어도 그녀의 반쯤 뜬 눈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T는 황급하게 병실 문으로 달려들어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여기!! 의사!!!! 의사! 간호사!!! 여기 환자가!!! 누가 좀 도와줘요!!! 누가 좀!!!”

 

  길게 늘어진 텅 비고 하얀 복도, T의 도움을 청하는 비명소리가 온 벽을 두드리듯 둥둥둥 울렸다. 물을 방류하는 거대한 댐의 소리처럼.

 


- Counting Pulses, END.

 

 

 

계속 읽기 - 북발: http://novel.bookpal.co.kr/view/37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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