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릅니까? 1-2. 손등을 바라보다

하달리 | 2018.03.20 23:56


무엇이 다릅니까?


Section: 1. 손등을 바라보다 - 02



  “시스, 어디 있어?”


  시스. 그가 알려준 그의 이름. 무슨 의미일까? 지금 까지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냥 그가 “그냥 시스라고 부르면 돼.“ 라고 말했으니까. 그는 시스였다. 

  시스는 깨어있는 대부분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가끔 책상이 아닌 거실 중간의 쇼파 베드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이안스가 그런 그를 부르면 시스는 대기모드에서 깨어나 상체만 일으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며 이름을 불러 주었다.


  “‘템페라투’. 여기.”


  ‘템페라투’, 혹은 짧게 ‘템페’. 시스는 늘 이안스를 그렇게 불렀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 역시 그녀는 모른다. 하지만 이안스는 그녀의 원래 이름인 ‘이안스 인듀‘보다 더욱 특별하고 근사한 애칭이라고 생각했다.

  시스는 이안스를 대신해 외부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외출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잠에서 깨었을 때 그가 집에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 그녀는 시스가 메세지를 남겨 놓았을 주방으로 갔다. 그가 늘 메시지를 남기는 냉장고의 작은 LED화면에 정육면체 모양의 아이콘이 어둑한 부엌 안에서 노랗게 점멸하고 있으면 그의 외출이 길어진다는 뜻이었다. 이안스가 부엌의 불을 켜고 냉장고에 가까이 다가가자 시스가 남긴 메시지가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템페, 오늘은 외출이 길어질 거야. 오후 1시에 ‘키샤’가 진찰하러 갈 거니까 무리해서 운동하거나 네트워크에 오래 접속하지 말도록 해. 하지만 하고 싶으면 책을 봐도 좋고./

  그녀는 시스의 메시지를 두어 번 더 들은 다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냉장고를 열었다. ‘for tempe.’ 딱딱한 글자로 메모가 붙어있는 사각 밀폐용기의 뚜껑을 열자 이안스가 좋아하는 레몬향이 첨가된 간이 식품들이 네모반듯하게 똑같은 모양으로 썰려서 들어있었다. 그녀가 통에 든 큐빅 모양의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들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으니 거실 쪽에서 키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스, 깼어?”

  “네, 일어났어요.”


  ‘키샤 리버스‘, 그녀는 이안스의 주치의였다. 외출이 거의 불가능한 그녀를 위해서 키샤는 규칙적으로 집으로 진찰을 와주었다. 이안스는 통 안의 음식을 깨끗이 비운 뒤에 그녀가 있는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 바싹 붙어있는 기다란 책상에 자그마한 몸을 기대고 차트를 확인하고 있는 키샤의 어깨를 엎고 있는 밝은 갈색 웨이브 머리카락이 그녀가 고개를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가을의 나뭇잎처럼 부드럽게 흔들거렸다. 그녀가 밝은 회색 눈동자로 이안스를 바라보며 눈을 구기고 웃었다. 언제나처럼 다정한 미소였다.


  “잘 지냈어. 이안스? 몸은 좀 어때?”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자고 막 일어났을 때 몸의 감각이 한참 동안 멍해요.”

  “음... 말초 신경 장애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서 그래. 늘 체크하고 있으니까 점점 더 나아질 거야. 지금은 어때? 기상한지 얼마 안됐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벽에 고정된 고풍스러운 괘종시계를 들여다보고 이안스에게 다가와서 가운의 앞주머니에서 꺼낸 검안경으로 한참 이안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안스보다도 작은 신장을 보안하기 위해 뒤꿈치까지 들고 바싹 몸을 붙인 그녀의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달짝지근한 향수냄새가 났다. 키샤가 몸을 떼고 이안스의 눈꺼풀과 관자놀이를 누르며 촉진을 하는 동안 그녀가 말했다.


  “지금은 괜찮아요. 오늘은 컨디션 좋은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자, 여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 진찰 준비 할게.”


  그녀가 방 한쪽에 이안스를 위해 마련된 진찰용 의자를 가리키고 그녀의 큼지막한 케이스안의 여러 장비를 꺼내서 의자 주변과 책상에 설치했다. 케이블을 정리하고 기계를 체크하느라 부산한 그녀의 뒷모습을 진찰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바라보고 있던 이안스가 말했다. 


  “궁금한 게 있어요. 키샤.”

  “응, 얼마든지 물어봐.”


  키샤는 그녀를 돌아보고 웃으며 대답한 다음, 진찰 준비를 위한 손놀림을 서둘렀다.


  “저기... 키샤... 키샤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응?”


  키샤는 대답과 함께 몸을 세우고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네 개의 데이터 케이블과 두 개의 타블렛, 10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전극들이 두 손과 품속에 가득 들려 있었다. 이안스의 질문을 잘 듣지 못했는지, 그녀는 이안스 쪽으로 걸어오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에게 되물었다.


  “뭐라고 했어?”

  “...좋아하는 사람 있냐구요. 애인 같은 거라든가...”

  “.....”


  키샤가 다가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다물어 버리자, 그녀는 머쓱해져서 코끝을 문질렀다.


  “아,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실례인가? 미안해요, 나는...”

  “아냐, 아냐. 괜찮아.”


  얼른 환기한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이안스에게 다가와서 의자 옆 테이블 위에 집기를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도구를 가지런히 정리해놓으며 그녀가 물었다.


  “왜 그게 알고 싶어졌어?”

  “그냥... 궁금했어요.”

  “어떤 게? 내가 애인이 있는지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가?”

  “아, 아니에요. 미안해요, 난 그냥...”


  키샤의 겹쳐지는 질문에 그녀는 조금 불편해져서 몸을 틀고 대답을 뭉그러뜨리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냥 막연히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궁금증일 뿐이었다. 키샤는 좋은 사람이니까 이안스의 ‘가짜 애인‘ 시스보다도 더 좋은 ’진짜 애인‘이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안스가 불편해 하는 게 느껴졌는지 그녀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안스의 몸 이곳저곳에 전극을 붙이는 규칙적인 움직임의 손과는 달리 그녀의 크게 확대된 동공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녀는 다시금 사과했다.


  “키샤, 미안해요, 괜히 이상한 거 물어봐서.”

  “응? 아, 아냐, 미안하긴.”


  딴생각을 했는지, 바싹 고개를 들고 얼른 대답한 키샤는 입 끝을 당겨 웃으며 여전히 손을 바삐 움직였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천장을 보며 눈만 굴리고 있는 이안스에게 전극을 모두 붙이고 전선들을 정리하는 내내 말이 없던 키샤가 드디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궁금해 할 거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난 애인 없어.”

  “없어요? 왜요? 키샤는 예쁘고...또 친절한데...”


  그녀는 눈썹을 찡긋하며 웃었다.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줬다니. 매일 자료에 파묻혀서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나 좋다는 사람이 있어야지...”


  말끝을 흐리며 케이블을 정리하는 손만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약간 주저하던 그녀가 어깨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짝사랑은 하고 있지만. 그는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거든.”

  짝사랑... 그래서 그의 질문에 그녀의 반응이 어색했던 것이었다. 그녀의 작은 몸이 더 작아져 보였다. 괜한 안쓰러움으로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이안스가 말했다.

  “그건... 쓸쓸하네요.”

  “......쓸쓸하다. 그래, 맞는 표현이야.”


  중얼거리며 대답한 그녀는 묵묵히 타블렛 화면을 두드리며 실행할 프로그램들을 정리했지만 화면을 보는 눈빛은 딴 생각을 하는지 복잡해보였다. 그리고 어쩐지 키샤의 눈빛이, 시스를 통해 사랑을 알아서 들떠있지만 그와 감정을 공유하거나 연결하지 못한 상태로 쓸쓸함을 느끼는 자신의 것과 닮은 것 같아서 괜히 마음속이 아련하고 시렸다.

  키샤는 좋은 사람인데, 왜 그 사람은 키샤를 좋아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왜 시스는-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한숨으로 웃었다. 키샤와 이안스의 경우는 다르다.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을 고백한들 돌아오는 것은 프로그래밍 된 대답뿐이었다. [나도. 네가. 좋아. 템페.] 그런 말들은 그녀의 마음을 더 쓸쓸하게 만들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니 여전히 복잡한 눈이다. 역시 괜한 걸 물었어. 그녀는 미안해져서 타블렛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키샤는 고개를 들고 이안스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신경 쓰지 마. 이안스. 자, 이제 플러그인(plug-in) 할게.”


  그녀의 목소리는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그녀가 가져 온 기계들과 연결해 몸에 붙이는 전극이나 손목과 목 뒤의 잭에 물리적으로 꽂히는 스트랩 타입 플러그의 느낌은 언제나 불쾌했다.


  “윽-”


  목 뒤에 찔러 넣어지는 강화플라스틱의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작게 내는 소리에 키샤가 손을 멈추고 이안스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불편해?”

  “아.. 그냥 참을만해요.”

  “느낌이 안 좋긴 할 거야. 그래서 요즘은 물리적인 플러그를 잘 쓰지 않지. 업그레이드된 전뇌(電腦)시스템엔 무선네트워크가 기본사양이고 이젠 그걸로 충분히 동기화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노이즈 없이 정확하게 데이터를 얻으려면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조금만 참아.”


  그녀는 모든 장치를 연결하고 이안스와 이어진 라인 중 가장 굵은 데이터케이블 하나를 자신의 목 뒤에 플러그인 했다. 키샤는 책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모니터들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화면의 터치 패널을 두드렸다. 이안스에게 연결된 기계들에서는 가끔 작은 전자음이 들렸고 그녀가 누운 진찰의자에 바싹 붙은 바이탈사인 표시기계가 그녀의 맥박 속도에 따라 삐이 삐이 하는 소리를 냈다. 제한된 진찰기계에 연결된 채로는 네트워크에도 접속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기계의 규칙적이고 지루한 소리를 세며 진찰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이안스는 그녀가 밭은기침을 하는 소리를 들었을 즈음 깜빡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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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무엇이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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