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갈증 - 12. 많은 물​

하달리 | 2015.12.13 18:22

 

영원한 갈증

 

12. 많은 물

 

 

 

  텅 빈 해영의 맨션. 아무도 없는 어둠에 잠긴 거실로 초인종소리가 들려 왔다. 10초. 20초. 묵묵한 시간이 흘렀다. 잠시 후 현관문에 달려 있는 전자 잠금장치의 키패드가 켜지는 소리가 들리고 삑삑- 숫자를 입력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현관문이 열리고 열린 문틈 사이로 빼꼼, 해영이 고개를 내밀었다. 자기가 사는 집인데, 다른 사람의 집에 몰래 침입하는 사람처럼 어두운 거실 안을 기웃거리며 현관에 들어선 해영은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적잖은 소음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스스로의 모습이 멋쩍어 픽픽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올라섰다.

  들어오자마자 웃옷을 벗어 던지던 오래된 버릇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해영은 거실중간에 멈추어 서서 에일델드리브가 자주 앉아 있곤 했던 일인용 소파의 등받이에 손을 올리고 멈추어 있었다. 까마득한 어둠속에 작은 숨소리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까 기다리던 해영은 이윽고 그 기다림을 포기하고 소파에 대충 주저앉았다.
  베란다 문 밖으로 지나가는 차들의 옅은 소음과 이따금 느껴지는 바람의 기척 외에는 아무소리도, 아무것도 없는 거실의 소파에 앉은 해영은 소파의 손잡이에 양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의미없는 시선을 베란다 밖으로부터 어두운 실내로 뻗어있는 네모난 창의 빛으로 던지고 있었다.

  그때, 문 밖으로 자박자박하며 누군가 걸어가는 기척이 났다. 번뜩 고개를 들었던 해영은 그 소리가 그녀의 현관문 앞을 지나쳐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가며 사라져 버리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소파 손잡이에 기댄 오른쪽 팔의 손바닥에 뺨을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편편하던 눈썹 중간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연이어 엽기적인 사건을 일으키던 호준이, 일주일 전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일어난 적도 없었던 일처럼 많은 피해자와 산더미 같은 사건 자료들을 남겨놓고 피 냄새가 진동하던 사건에서 호준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사원들이 긴 기다림에 심신 모두 지칠 정도가 되었지만 호준, 혹은 다른 수상한 인물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거나 추가적인 범행을 일으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의 주변이 조용해지기 직전, 에일델드리브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었다.


  돌연, 그녀의 곁에 있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아무리 에일델드리브가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해도, 해영에게 그가 보이는 만큼 그녀의 행동이 부자연스럽거나 나아가서는 그녀가 평범하게 생활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라고 말했지만 어쩐지 개운치 않은 설명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나마 풀어진 얼굴의 표정 속을 찬찬히 살펴 알아내보고 싶어도 그는 무뚝뚝한 얼굴 뒤에 꼭꼭 숨어서 낮은 목소리로 통보하듯 짧게 설명을 끝냈다.
  길지 않는 설명을 하는 내내 에일델드리브는 어쩐지 차가운 목소리였다. 왜 그랬을까? 그녀의 퉁명스러운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서라도 늘 그랬듯 장난스러운 농담을 하고 다정하게 머리카락을 만지고 했을 그인데, 그녀는 쓸쓸한 기분이 되어 이마를 긁었다. 그는, 앞으로 호준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호준은... 아직도 너의 피를 원한다. 하지만, 절대 너를 해치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 곁에서 그의 의지를 도와주어야해. 호준을 보호하는 것은 너를 보호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혹시라도 네 주변에 다른 문제가 일어나 네가 위험에 처한다 해도 걱정하지 마. 나는 언제나 너에게서 멀리. 그러나 가까이  있을 것이다.]

 

  해영은 일방적인 그의 말에 몇 마디 반박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호준에게서 해영을 지킨다- 그것이 에일델드리브가 그녀의 곁에 있는 이유니까. 왜 그녀와 함께 있지 않는가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묻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하는 편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불만스러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쾌한 기분으로 해영은 기댄 손바닥에 볼을 꽉꽉 눌렀다. 그렇게 미심쩍은 모습으로 호준의 존재뿐 아니라 에일델드리브도 그녀의 곁에서 거의 모습을 감추어 버린 이후, 흙탕물의 거품같이 일어나던 심난한 일들 모두 에일델드리브가 대단한 수라도 쓴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히 가라앉아 버렸다. 그런 사실에서 조차 괜한 불편함을 느끼는 해영의 가슴속의 호준에게서 비롯된 불안과 우울은 사건 없는 조용한 날이 이어지며 조심스러운 안도감이 되어갔지만, 그와는 다른 초조함이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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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영원한갈증
2015.12.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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